우승반지와 인연이 없었던 야구영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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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게릭(6번)이나 조 다마지오(9번),데릭 지터(4번)같은 뉴욕 양키스의 슈퍼스타들이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우승 역사의 3분의 1을 이룬 스탠 뮤지얼(3번)같은 위대한 선수들은 그들의 화려한 명성에 걸맞게 월드시리즈에서도 단 한 번의 월드시리즈만을 내줬을 뿐 나머지 월드시리즈를 휩쓸며 우승반지를 가져간 대표적인 야구영웅들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역사의 모든 슈퍼스타들이 이들처럼 가을의 고전에서 우승이라는 기쁨을 누린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불운의 슈퍼스타들 중에는 유난히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들이 많다는 것은 잘 알 수 있으리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역사를 대표하는 선수라고 할 타이 캅. 하지만 캅만큼이나 월드시리즈 우승과 운이 닿지 않았던 선수도 없었을 것이다. 캅은 1962년(이하 한국시간) 모리 윌스에 의해 깨어지기까지 47년 동안이나 한 시즌 최다 도루 기록 보유자였고 1985년 피트 로즈가 무너뜨리기 전까지 무려 57년 동안이나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가지고 있었던 위대한 야구영웅이었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것은 자신에게는 감히 넘볼 수 없는 하나의 이상에 지나지 않았다.

1907년부터 1909년까지 3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던 타이거스는 운명의 우승반지를 놓고 1907년과 1908년에는 시카고 컵스와 대결했지만 두 번 모두 1승 4패로 시리즈를 내주고 말았다.그리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맞붙은 1909년의 월드시리즈에서는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지만 결국 시리즈 전적 3승 4패로 발목을 잡히며 우승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7차전이 열린 1909년 10월 16일 홈구장인 베네 파크에서 캅은 타이거스가 0 대 8로 완봉패 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쓸쓸히 월드시리즈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후 캅은 19년간이나 더 야구장을 찾았지만 더 이상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던 것이다. 타이거스는 캅이 은퇴한 지 7년이 지난 뒤인 1935년 행크 그린버그를 앞세워 비로소 처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였다.

마지막 4할 타자라는 칭호와 함께 19시즌 동안 무려 12번의 출루율 1위에 올랐으며 역대 통산 출루율에서도 1위에 올라있는, 그리고 로저스 혼스비와 더불어 트리플 크라운을 두 차례 기록한 최고의 교타자 테드 윌리엄스도 월드시리즈만큼은 운이 따르지 않았다.

1946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월드시리즈가 윌리엄스가 맞이한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시리즈였다. 윌리엄스는 시리즈 7차전 동안 고작 25타수 5안타의 빈공에 허덕였고 이와 함께 보스턴 레드삭스의 우승 꿈도 사라졌다.레드삭스는 윌리엄스라는 걸출한 스타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28년만에 찾아온 우승 기회를 살리지 못했던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선수로서 가장 많은 홈런을 날린 사나이,그리고 윌리 메이스에 이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선수로서 두 번째로 정규시즌 MVP를 수상한 윌리 맥코비에게 그의 능력을 시험할 꿈의 무대 월드시리즈는 딱 한 번 찾아왔다.

1962년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를 상대하게 된 맥코비는 후일 3차례에 걸쳐 홈런왕을 차지하였던 힘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채 시리즈 7차전 동안 고작 하나의 홈런으로 1타점을 기록하였을 뿐 15타수 3안타(.200)의 빈타에 허덕이며 자신의 유일한 월드시리즈를 허무하게 날려 버렸다.맥코비는 그의 스승이었던 테드 윌리엄스처럼 정규시즌에서 통산 521개의 홈런을 기록했지만 월드시리즈에서조차도 생애 딱 한 번 월드시리즈를 경험했고 7차전까지 간 그 월드시리즈에서 윌리엄스처럼 .200의 타율을 기록하며 우승반지를 얻지 못한 불운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1967년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는 칼 야츠렘스키는 저주의 팀 레드삭스를 자신의 팀으로 선택한 것이 후일 불운의 월드시리즈를 맞이하게 될 운명의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

윌리엄스만큼이나 출중한 능력을 보유했던 야츠렘스키이지만 그도 역시 레드삭스의 불운을 넘어 설수는 없었다. 야츠렘스키는 1967년과 1975년의 두 번의 월드시리즈 동안 .352라는 높은 타율을 올리며 분투했지만 결국 레드삭스는 카디널스와 신시내티 레즈에게 똑같이 3승 4패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다.

불운의 레드삭스의 3번째 스타는 칼튼 피스크였으며 그도 역시 팀선배들인 윌리엄스나 야츠렘스키와 마찬가지로 7차전까지 가는 힘겨운 시리즈를 경험하면서도 우승반지를 얻지 못했다.

1975년 자신의 유일한 월드시리즈였던 신시내티 레즈와의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월드시리즈 역사상 가장 극적인 홈런 중의 하나를 때려냈던 피스크는 그러나 그의 이러한 인상적인 활약에도 불구하고 레드삭스는 1918년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3번째 월드시리즈 우승 실패라는 분루를 삼켜야 했고 피스크 자신은 다시는 월드시리즈 무대에 서지 못했다.

통산 8차례나 타격왕에 올랐지만 월드시리즈 우승과는 모진 인연을 가지고 있었던 토니 그윈 역시 결국은 우승반지을 얻지 못한 채 은퇴하였다.그윈은 현역 최고의 교타자라는 그의 이름에 부합하듯 1984년과 1998년 두 번의 월드시리즈 동안 .371의 높은 타율을 올리며 분전했다.하지만 소속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1984년에는 타이거스에게 1승 4패로,1998년에는 양키스에게 단 4차전만에 무릎을 꿇으며 우승반지를 얻는데 실패했다.

배길태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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