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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미얀마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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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동과 아프리카 원유 수송 위한 '인도양 루트' 구축
대우인터내셔널, 중국의 에너지 갈증을 기회로 이룬 쾌거

2009년 11월, 세계 주요 신문에는 중국 충칭(重慶)에서 날아온 사진 한 장이 실렸다. 한 고가도에 작은 택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비행장? 아니다. 정답은 가스 충전소다. 이들 차량은 가스를 넣기 위해 이같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이다. 당시 충칭은 액화천연가스(LPG) 공급이 중단되면서 LPG를 이용하는 택시가 운행을 중단해야 했다. 중국의 에너지 공급 현황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충칭 택시의 '올 스톱'

꼭 충칭만의 일도 아니다. 일 년에 중국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자동차가 약 1900만 대다.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 보유대수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 보유대수를 육박하는 물량이 중국에서 1년 사이에 뚝딱 만들어져 시장에 나오는 것이다. 2010년 이후 중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이자 시장이라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는 자원 차원에서 본다면 석유 먹는 기계일 뿐이다. 한 해에 1900만 대가 새로 생긴다면, 그만큼 석유 소비가 늘어날 게 뻔하다. 원유를 자급해 오던 중국은 1993년 석유 순수입국으로 전환했다. 지금도 5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2009년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이 됐고, 올해는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이 될 것이다. 2030년에 가면 석유의 80%를 해외에서 들여와야 할 판이다. 한 방울의 석유가 급한 실정이다. 자원이 중국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중국이 기를 쓰고 해외 자원 사냥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9년 충칭의 가스 공급 중단 사태는 중국 정부에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동부 지역은 바다를 타고 해외에서 에너지를 들여올 수 있지만 서부 지역은 긴 수송으로 인해 공급에 애로가 심했다. 어떻게 하면 서부 지역에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까? 그래서 더욱 더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미얀마 루트'다. 중국 정부는 동남아시아로부터 원유를 들여오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고, 지난 7월 말 그 결실을 봤다. 미얀마산 가스를 들여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5월 방문한 미얀마 중부도시 만달레이에서 그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송유관 만리장성

만달레이와 중국 쿤밍(昆明)을 연결하는 3번 국도. 도로에는 쿤밍과 만달레이를 오가는 트럭·승용차·용달차 등으로 붐볐다. 도로 옆 산 중턱에 황토가 드러난 길이 보인다. '산에 웬 길이냐?'는 물음에 현지인 난조캉잉은 '송유관 만리장성'이라고 답했다. 미얀마 서부 작퓨 항구에서 쿤밍으로 이어지는 가스·송유관을 '만리장성'으로 표현한 것이다.

전체 길이 793㎞, 지난 6월 초 완공됐다. 그리고 7월 말 파이프라인을 타고 대우인터내셔널이 미얀마 서부 해양에서 채굴한 가스가 쿤밍으로 보내진다. 대우인터내셔널은 하루 1억2000만 입방피트의 가스를 중국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하루 5억 입방피트까지 판매량을 늘릴 계획이다. 지난 4년 온갖 역경에 굴하지 않고 탐사, 개발, 판매에 이르는 원유개발 사업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산업사에 남을 일이라는 평가다.

올해 말부터는 원유 수송도 이뤄진다. 중국석유(CNPC)는 "가스관과 나란히 가는 원유 수송라인도 94%의 공사율을 보이고 있다"며 "올해 말 준공되면 바로 원유 수송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 해 약 2200만t의 원유를 수송할 수 있게 된다.

이 루트가 중국 자원 개발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미국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믈라카 해협을 통하지 않고도 인도양으로부터 중동·아프리카의 원유를 들여올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산드라 오 양군경제연구소 박사는 "파이프라인의 미얀마 기착지인 작퓨 지역에는 중국이 20년간 쓸 수 있는 항구가 건설 중"이라며 "이 항구가 제 기능을 하게 되면 중국은 '믈라카 루트'보다 원유 수송로를 약 1200㎞ 줄일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중국이 하루에 수입하는 원유는 약 543만 배럴, 이 중 400만 배럴이 믈라카를 통해 들어온다. 송유관이 완공되면 하루에 약 44만 배럴의 원유를 대성양에서 직접 들여올 수 있다. 전체 규모로 볼 때는 그다지 많지는 않다. 그러나 미국의 에너지 패권에서 벗어나려는 중국으로서는 또 다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4년 정도면 투자비 회수

이번 '미얀마 가스관' 준공으로 중국은 해외로부터 들여오는 5개의 송유·가스관을 갖게 됐다. 가장 먼저 구축된 것은 '카자흐스탄 루트'다. 2006년 완공된 이 송유관을 통해 한 해 약 1400만t의 중앙아시아산 원유가 들어온다. 내년에 확장 공사가 끝나면 용량이 2000만t으로 늘어나게 된다.

2009년 완공된 '투르크메니스탄 루트'는 중앙아시아의 천연가스를 들여오게 된다. 이 파이프라인은 특히 상하이까지 연결된다.

러시아로부터는 2개 파이프라인이 구축돼 있다. 이 중 현재 가동되고 있는 '러시아-다칭(大慶)' 라인은 한 해에 약 1500만t의 러시아산 원유를 들여온다. 계약에 따라 2018년에는 3100만t으로 늘어나게 된다. 중국은 또 '러시아-하얼빈' 루트를 통해서도 러시아 원유와 천연가스를 들여온다. 중국은 최근 러시아 최대 국영 에너지회사인 로즈네프트와 25년에 걸쳐 2700억 달러어치 원유를 들여오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번 미얀마 파이프라인 건설로 중국은 중동과 아프리카로 연결되는 '인도양 루트'를 새로 추가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 끝에 대우인터내셔널이 있다.

김일우 대우인터내셔널 부장은 "2000년 탐사권을 획득한 지 13년 만에 지난달 상업 생산을 시작했다"며 "총 투자비 26억 달러(대우 51%)가 들었지만4년 정도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는 향후 25~30년 동안 연평균 3000억~4000억원의 세전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의 미얀마 유전개발 사업은 중국의 에너지 갈증을 이해하면 그곳에서 엄청난 경제적 기회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우덕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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