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특사 방북 불허 … 북한 돌변한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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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로버트 킹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를 평양에 초청했던 북한이 이를 취소한 건 미국의 B-52 전략폭격기가 한국에서 훈련했기 때문이라고 31일 밝혔다. 킹 특사는 북한에 억류 중인 재미교포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씨의 석방을 위해 30일 방북할 예정이었다. 북한은 그러나 한·미 합동 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기간(19~29일) 중 미국의 B-52 전략폭격기의 한국 출격을 트집잡아 킹 특사의 방북을 불허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31일 관영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미국이) 전례 없이 연속적으로 B-52H 전략폭격기를 조선반도(한반도) 상공에 들이밀어 핵폭격 훈련을 벌이는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며 “미국은 모처럼 마련됐던 인도주의 대화 분위기를 한순간에 망쳐놨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돌연한 태도 변화와 관련, 한·미 양국은 북한 측의 주장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군 관계자는 “괌에 배치된 B-52 전략폭격기는 수시로 한반도를 오가며 군사훈련을 한다”며 “이번 훈련기간 한반도 전개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줄 수는 없지만 인도적 문제와 연관 짓는 건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래서 B-52 출격을 북한이 문제 삼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관측이다.

 우선 현재 사전실무 협의가 진행 중인 남북, 북·미 대화와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몸값 올리기를 노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훈련 중일 때는 침묵하다 우다웨이 중국 측 수석대표의 방북(26~30일)이 끝나고 UFG 훈련이 종료되는 시점을 노려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려는 계산이 담긴 것이란 해석이다.

 북·미 정상화 협의를 위한 뉴욕채널에 대한 불만과 6자회담을 앞두고 핵개발의 정당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라는 관측도 있다. 모처럼 조성된 대화국면을 깨지는 않으면서 ‘알아서 하라’는 뜻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북한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남북 상설협의기구 구성을 위해 2일 개성에서 열리는 개성공단 공동위 1차 회의를 비롯해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 등은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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