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어바웃 슈미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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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슈미트라는 노인이 있다. 그는 이제 막 수십년 간 다니던 보험회사를 정년퇴직했다. 살기 좋은 교외에 집도 있고 전업주부인 조강지처도 있다. 자상한 아내는 여행용 트레일러를 구입해 남편이 퇴직 다음날 그 곳에서 특별한 아침식사를 즐기게 해준다. 착실히 월급 받아 노후를 대비한 전형적인 중산층 가장이다.

***정년퇴직 후 되돌아 본'나'

그런데 한꺼풀 들춰보자. 슈미트는 밤마다 잠든 아내를 보며 "내 옆에서 자는 이 쭈글탱이는 누구인가"라고 자문한다. 아내는 변기 커버에 오줌이 튄다며 슈미트에게 앉아서 일을 보라는 기도 안 차는 요구를 한다.

게다가 갑작스럽게 아내가 죽은 뒤 옛날에 자기 친구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외동딸은 물침대 외판원이자 척 봐도 사기꾼임이 뻔한 놈팽이와 결혼하겠다고 악악댄다.

'어바웃 슈미트'는 말 그대로 슈미트에 관한 영화다. 슈미트는 인생에 대해 특별한 성찰이나 후회 등을 해볼 짬 없이 집 마련하고 빚 갚고 애 키우는 데 전력을 쏟아부은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생존 경쟁에서 한발짝 물러선 퇴직 후에야 비로소 평생 느끼지 못했던, 또는 외면했던 문제들과 부딪친다. 바로 타인과의 관계나 인생의 참된 의미 같은 것들이다.

영화는 딸의 결혼식을 위해 트레일러를 몰고 길을 떠난 슈미트의 여정을 쫓아간다. 그는 사람들과 마주치면서 조금씩 변해 간다. 자신이 실은 굉장히 외롭다는 사실을 깨닫고 과연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나 자문도 하게 된다.

여기에 슈미트가 하루 77센트의 후원금을 내는 탄자니아 꼬마에게 쓰는 편지가 내레이션으로 교차된다. 영어를 알 리 없는 이 꼬마에게 슈미트는 난생 처음 흉금을 털어놓는다. 영화는 이러한 우연한 만남을 통해 처음으로 타인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타인과의 관계도(圖)안에 자신을 세워보는 슈미트의 성찰로 채워진다.

***잭 니컬슨 개성 연기 압권

이 영화는 잭 니컬슨이 없었다면 굉장히 지루할 뻔했다. 니컬슨은 슈미트라는 남자가 서서히 자신을 발견해 가는 과정을 특유의 개성과 번득이는 카리스마로 풍부하게 채워나간다. 니컬슨은 이 작품으로 제75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통산 12번째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어바웃 슈미트'는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대신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뚜렷한 기승전결 없이 한 남자의 뒤를 1백20분이나 따라다니기는 수월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젊은 관객들에게 선뜻 권하기엔 뭐한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극장 문을 나서면서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돌아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아내도 떠나고 딸도 떠났지만, 슈미트는 행복한 남자가 아닐까. 감독은 알렉산더 페인. 지난해 칸 영화제 경쟁작이었다. 3월 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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