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에 산다(663)|「재해」이전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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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는 「천재지변」은 예측하지도 못할 것이고 불가항력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재지변에 당한 경우이면 엄숙히 맺었던 약속을 이행치 앉아도 된다는 생각이 사회통념이다.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돌발사이고 누구의 책임으로도 돌릴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인 모양이다.
그것은 대자연의 조화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섭리를 사후에 음미해 볼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벼락은 전기적인 힘의 작용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으면서도 피뢰침을 달 생각은 안하고 하늘이 시컴해 지고 천둥이 노호하면 모두들 두려워만 한다. 그러면서도 한펀으로는「치산치수」란 말들을 쉽게 얘기한다. 마치 옛날의 군주가 그 신하들을 다스리듯이 우주공간과 산과 들을 우리 뜻대로 다스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비가 개고 불길이 꺼지고 나면 대자연은 우리의 뜻 그대로 다스릴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큰물만 걷히면 도도히 흐르는 강가에 빈약하기 짝이 없는 초가집들을 거침없이 짓고, 산의 나무를 베어 쓰고, 땅을 파헤치고 들 한다. 이런 만용과 두려움의 반복가운데 생명과 재산들을 무의미하게 바쳐왔다. 조상에게 바치는 제물이 허례허식이라고 하여 아깝다고 생각하게 된 우리들이 저처럼 무의미하게 바치는 자연에의 제물은 어떻게 용납할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산을 깎아서 집을 짓자면 정밀한 생각과 준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허구의 두려움과 만용은 자연의 애착으로 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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