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표정없는 전례 교체|미군을 보내는 캄보디아 전선|전의 낮고 시가엔 평화「무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프놈펜을 압축하는 주변 전운이 검게 짙어가는 위급에 비해 「콤퐁솜」(구시아누크빌)에서는「카지노」를 즐기는 태평「무드」가 충만했다. 「프놈펜」에서 1백20마일 떨어진 동남단에 자리잡은「캄보디아」유일의 국제항「콤퐁솜」시민들은 전쟁기분에서 동떨어진 평화스런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캄보디아」토박이라고 자부하는 「헨·케스·사나」시장은『3·18혁명이전 공산군은 이 항구를 마음대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곳에 군사기지를 두지는않았다. 혁명후 지금까지 공산군회 공격을 한번도 받은바 없다』고 유창한 불어로 말했다.「스베이리엥」성장으로 있다가 혁명후 이곳 특별시장으로 전근해온 「사나」씨는 『현재 이곳에서 「캄보디아」군 2개대대가 경비를 맡고 있는데 공산군이 공격을 해오면 과연 막아낼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방훈 특파원 「헬리콥터」순방기>
『「프놈펜」으로 통하는 4번도로는 「베트콩」공격으로 5, 6군데 차단돼 있다. 임시로 수리해서 통하면 또 끊기곤 한다. 언제 이곳에도 이들이 밀려올지 겁난다』고 덧붙였다.
거구인 항만책임자「민·킴리」씨는「콤퐁솜」항은 「캄보디아」의 3백30km 해안선중 유일한 국제항이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는 이곳 수심이 10m에서 4m로 변함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긴 해안선에 군데군데「캄보디아」군이 경비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반면 부두 바로 옆에「카지노」가 있어 남녀노소할 것 없이 이곳에서 열심히 투전하고 있었다. 외국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로수들도 깔끔히 손길한 것이 눈에 띄었다. 호화판「호텔」·「모텔」등도 많았는데 손님은 한사람도 없어 종업원들은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코아·모텔」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메뉴」에 「루와이알」이란 단어가 전부 검은「잉크」로 지워져있었다. 「시아누크」초상화 철거와 동시에 왕제도 이미 폐지된것 같다. 경비사령관「몰·클렝」대령은 『지난 4월11일 공화제 변혁을 결정했는데 공포만 보류한 것이다. 사실상 지금「캄보디아」는 공화국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콤퐁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콤포트」항은 분위기가 삼엄했다. 바다와 이어진 강가에는 기관총을 걸어놓고 「캄보디아」군과 월남군이 경비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여자 군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항시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성장「룬·프라수트」대령은 『4월 하순부터 한달동안 공산군이 이곳을 지배하고 있었다. 월남군이 탈환작전에 성공, 지금은 정부군 지배하에 들어갔다. 성내의 인구 4만, 「콤포트」시는 1만5천명이 살고있다. 중국인 2천명, 월남인 3백명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학교 교원들이 공산당원이었는데 지금은 다 도망갔다. 지금 제일 곤란한 것은 경제문제이다. 인구의 5%가 생업에 종사할뿐 나머지는 부녀자·노인·연소자들이다』라고 말했다. 「프라수트」성장은『3·18이전「베트콩」은 자기집 드나들다시피 이곳에서 군수물자를 수송했다. 어떤때는 온종일 「트럭」대열이 길을 메웠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속에 아직「베트콩」들이 은거하고 있는데 「캄보디아」 군 6개대대가 이들을 지키고 있다. 병력부족·장비불충분·군복 부족이 심하다. 월남군이 옆에있어 마음 든든하다』고도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손꼽히는 휴양지「켑」시는 유령도시 같았다. 성장사무실 인근에 군인들의 훈련하는 모습이 보였을뿐 거리를 다니는 사람을 구경할수 없었다. 호사한「빌라」들이 모래사장을 끼고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데 모두 텅텅 비어있다. 불란서인·부호·정부 고위급 관리들의 별장이라 주인이 없을 수밖에…. 도로포장이 잘되어 있고 「오존」이 시원하다. 거리나 바닷가에 남녀석고상들이 많은데 모두 나체이다. 산중턱에 자리잡은 「시아누크」별장은 웅장했다.
하늘을 찌르는 고목과 이름모를 사철꽃들이 주위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침실·접객실·객실 등 세건물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었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 호화로운 가구들이 보는 사람의 눈을 끌었다. 유리·가구들은 모조리 부서져 있었다.
1백명을 수용할수 있다는 접객「홀」옆에는 깊은 「벙커」가 있었다. 「시아누크」가 호화로운 사치생활을 하면서도 항시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삼손」서장은 말했다. 「시아누크」가 「모니크」부인과 즐겼다는 침대가 산산조각 부서져 있는 것을 보고 인생무상을 새삼 느꼈다.
「켑」이 상장「움·사무드」씨는『한때 6천5백명이 이 도시에 살았다. 지금은 1천명이 있을까- 한달전 공산군이 공격해 왔을때 모두 피난갔다.「캄보디아」군 1개대대가 이곳을 지키고 있는데 위험하다』고 솔직이 말했다. 그 이유는 「캄보디아」정부군이란 현지 주민들을 동원, 지금 훈련시키고 있기때문 이라고 한다. 성장사무실 앞 마당에서 기관총교육을 받는 1개 소대병력을 보고 있으려니 한심했다. 군복도 제각기 아무거나 걸치고 발은 벗고, 군인이란 기백을 누구에게서나 찾아볼수 없다.
「콤풍스페우」「프놈펜」「프레이벵」「니크리영」은 전투중이어서 위험하다는 정보가 있어 상공만 돌고 「사이공」으로 돌아갔다. 「헬리콥터」에서 월남군 9수단장「T·B·디」준장은 『4군단 소속 9사단과 2사단이 「캄보디아」에 들어가 있다. 남쪽「콤포트」에서 「타니」-「타케오」-「니크리영」을 잇는 국경선에서 20km이내를 지키고 있는데「캄보디아」군이 요청하면 어디든지 들어가 싸운다. 20km까지 미군이 병참지원을 해주고 그이상 들어가면 월남군 독자적으로 병참지원을 한다. 9사단은 「콤퐁스페우」와「프레이뱅」시에 들어가 공산군을 쫓아냈다』고 말하면서 『공산군은 5만4천명에서 9만5천명으로 증강했다. 「메콩」강 동쪽과 동남쪽에서 계속 저항이 심하다. 「프놈펜」주원도로는 모두 차단되어 있다. 따라서 수도로의 수송은 「메콩」강과 공중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캄보디아」군은 공산군이 쳐들어오면 싸우지 않고 후퇴한다. 그리고 월남군에 지원요청을 하는데 월남군이 도시를 탈환해줘도 「캄」군이 오래 지키지 못하는 것이 탈이다. 월남군이 무제한 주둔할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캄」군은 적의 수를 과장 보고하는데는 딱 질색이다』라고 전황을 설명했다. 주「캄보디아」 공사로 발령을 받은 이택근 공사는 25일「프놈펜」을 재차 다녀왔는데 전황에 비해서 조용하더라고 말했다. 이공사는 『3개월 이내에 공산군이 쳐들어 온다는 풍설이 「프놈펜」시내에 퍼져 부호들은 재산해외도피에 혈안이다.
여론조사결과 도시는 「론·놀」지지, 농촌은「시아누크」, 상중류층은 현정부지지, 노동자·농민은 기회주의를 택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공산교육을 받은 중국인과 월남인들이 이권관계로 공산당과 손을 떼려고 애쓴다고 하더라』고 부언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