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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원장 연임 싸고 조계종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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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자승 총무원장

국내 최대의 불교 종단인 조계종이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10월 10일로 예정된 차기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서다. 현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의 연임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다.

좀처럼 ‘종단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전국선원수좌회(공동대표 정찬·원각)는 24일 성명을 내고 자승 총무원장의 연임 기도 즉각 중단과 퇴임을 촉구했다.

 수좌회는 “오늘의 조계종이 자승 원장을 중심으로 한 종권 실세들의 부정(不淨)에 의해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미 짜인 각본에 따라 자승 원장의 전격적인 재추대에 의한 마지못한 수락이라는 수순으로 진행되고 있는 불교광장의 비법성(非法性)은 기득권 유지와 나눠 먹기의 음모임이 천하에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좌회는 ▶자승 원장의 연임 기도 중단과 퇴임 ▶자성과 쇄신 결사의 미명 아래 진행되는 특정인의 연임 획책 중지 ▶덕망과 수행력을 갖춘 스님을 총무원장으로 선출할 것 등을 요구했다. 지난해 도박 동영상으로 인한 종단 혼란에 “직·간접적으로 자승 원장을 중심으로 한 집행부가 연관돼 있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성명에서 언급된 불교광장은 6월 말 결성됐다. 화엄회·무량회·무차회·보림회 등 지난해 도박 파문 수습 차원에서 공식적으로는 해체된 종책모임(계파)의 구성원들이 한데 뭉쳐 총무원장 단일 후보를 낸다는 취지였다. 탈 많은 선거보다 사실상 추대를 통해 종단 화합을 이루겠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곧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법등 스님이 이달 초 석연치 않은 이유로 불출마 선언을 한 데 이어 법등 스님 소속 계파인 옛 무량회는 자승 원장이 불출마 선언을 하지 않으면 26일 불교광장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불교계는 무량회가 이탈할 경우 불교광장은 사실상 와해될 걸로 보고 있다.

 수좌회의 성명 발표는 훨씬 폭발력이 클 전망이다. 수좌회는 전국 96개 선원 1800여 명의 선승(禪僧)을 대표하는 종단 청정성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특히 종단 안팎에서는 수좌회를 이끄는 사실상 좌장 격인 경북 문경 봉암사의 적명 스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적명 스님은 조계종 하안거 해제일인 21일 봉암사로 총무원 간부 스님들을 불러 자승 원장의 재임 여부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물었다고 한다. 22일까지 불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연임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총무원에서 답이 없자 수좌회가 성명을 내도록 했다고 한다. 적명 스님은 선승들 사이에 종정보다 영향력이 더 클 정도로 신망이 두텁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수좌회의 한 관계자는 “적명 스님의 입장이 무척 강경하다”고 전했다.

 자승 원장은 거취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25일 호주로 출국했다. 한국불교 세계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공은 자승 스님에게 넘어간 상태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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