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읽는 출판] 책 라이프사이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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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에 유통기한이 있듯이 책에도 라이프사이클이 있다. 문제는 발행 종수는 늘어나는데 책의 수명이 날이 갈수록 더 짧아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책은 일주일 단위로 신간을 소개하는 각종 미디어의 서평 주기를 따르는 것이 보통이며, 조금 낫다 싶어도 3개월을 버티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그러나 드물게 해를 거듭할수록 판매 부수가 상승하는 유별난 책들도 있다. 1991년 출간된 임철우의 성장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2000년을 기준으로 2001년에는 두배가, 2002년에는 무려 열배 가량 판매가 늘었다.

99년에 출간된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도 2000년에 비해 2002년에는 일곱배 가량 판매 부수가 급신장했다. 96년 출간된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역시 꾸준히 판매가 상승한 책으로 2000년에 비해 2002년에는 다섯배가 껑충 뛰어 올랐다.

이상의 책들은 출간 당시에는 일부 타깃 독자들 사이에서 읽히다가 입소문을 통해 혹은 추천도서로 선정되며 청소년층의 필독서로 자리잡은 결과 해마다 판매 부수를 갱신하고 있다.

93년 국내에 첫 소개돼 10년 가까이 롱런하고 있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단연 최고의 판매 부수 증가를 보이고 있는 책으로 2000년에 비해 2002년에는 세배 이상 판매가 신장됐다.

유럽에서야 이미 70년대에 네쌍 중 한쌍이, 90년대에는 세쌍 중 한쌍이 이혼을 했다지만 우리가 30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국.영국에 이어 호주와 함께 세계 3위의 이혼국가 대열에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나면 적잖이 놀라게 된다.

두쌍 중 한쌍이 이혼을 한다는 프랑스 파리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도 열쌍 중 네쌍이 파경을 맞는 이혼대국이다.

사회의 개방화나 성격 차이 등이 이혼의 주원인이지만 우리의 경우 경제적 어려움이 가정 해체를 불러온 일명 '국제통화기금(IMF) 이혼'과 자식을 다 길러놓고 하는 황혼 이혼이 많은 것은 이례적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풍부한 임상적 사례를 통해 남녀의 성 차이를 인정하고 적절한 대화법을 습득해 이혼 직전의 부부를 치유하는 책이다.

이 책은 명퇴와 실업, 가계 파산 등 가정 경제의 파탄이 시작된 97년 무렵 가속이 붙었는데 당시 3만부 정도 판매됐던 책이 지난해에는 30만부가 팔렸다. 가정해체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하는 것과 비례해 가정 보호 본능이 책의 판매를 부추긴 셈이다.

한미화(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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