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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야생동물 잡던 마사이족 한국서 박사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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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0일 부산 고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케냐 마사이족 출신 벤손 카마리(앞줄 오른쪽)가 고향에서 온 어머니를 업고 졸업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일 부산시 영도구 고신대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은 벤손 카마리(30)씨. 길고 늘씬한 몸을 하늘 높이 날리며 껑충껑충 뛰는 ‘점핑 댄스(jumping dance)’를 잘 추는 마사이족이다.

 그는 동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서쪽으로 300㎞쯤 떨어진 키탈레 지역 엘곤 마사이족으로 태어났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 맨발로 생활했다. 마을 친구들과 숲에서 야생동물을 잡을 정도로 용감했다. 조상들이 사자와 1대1로 대결해 이겼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집은 가난했다. 홀어머니 밑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밭에서 수확한 옥수수를 시장에 내다 팔아 근근이 생계를 꾸렸다. 벤손이 공부를 잘하자 할아버지는 소를 기르며 우유를 팔아 학비를 보탰다고 한다. 마을 주변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를 1등으로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이로비에 있는 데이스타대 커뮤니케이션학과로 진학했다. 이 마을 고등학교와 대학교 진학 1호였다.

 대학 3학년 때 그는 데이스타대와 자매결연을 맺은 고신대에 교환학생으로 1년간 유학을 왔다. 교환학생을 마친 뒤 모교로 다시 돌아가 2008년 2월 졸업식에서 최고의 학생으로 선정돼 각종 상을 받았다.

 당시 졸업식에 참석했던 김성수 고신대 총장은 벤손에게 고신대로 유학올 것을 권유했다. 고신대 측은 장학금을 주고 기숙사를 제공했다.

 벤손은 2008년 3월 고신대 대학원에서 교육학과 석사과정을 시작했고, 이번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제목은 ‘케냐와 한국에서 문화를 형성하는 매개체 비교연구’다. 그는 다음 학기부터 고신대 교육학과 교수로 임용될 예정이다.

 - 마사이족 출신이라고 주변에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한국에선 마사이족은 맨발로 다니고, 걸음걸이가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더라. 마사이족 전통춤인 점핑댄스를 해보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마사이족도 이제는 문명의 혜택을 보면서 신발을 신는다. 일부 마사이족만 아직도 숲속에서 원시인처럼 산다. 내가 용맹한 줄 알고 무시하거나 싸움을 거는 사람이 없더라.”

 - 박사학위를 받은 소감은.

 “지금까지 많은 한국인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 도움이 헛되지 않도록 나도 지금부터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겠다.”

 - 한국에서 7년을 보낸 소감은.

 “한국은 모든 것이 풍족하다. 한국도 어려웠던 시절 다른 나라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아프리카에 많은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

 그는 한국 내 케냐 커뮤니티를 위한 신문 ‘잠보-케냐 코라(Jambo-Kenya Kora)’를 분기별로 발행하고 있다. 고신대 외국인 유학생 모임(KUFSA)의 첫 회장으로 외국인 유학생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부산=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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