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조폭이 활개칠 때 대학은 수수방관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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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올 들어 전남 순천, 경북 김천·구미, 강원 삼척, 충북 충주 등 6군데 대학에서 조직폭력배들이 비리를 저지르다 경찰에 적발됐다. 조폭이 조직원을 총학생회장에 출마시켜 총학생회를 접수한 뒤 학생회비를 빼돌리거나 이권에 개입한 혐의다. 전남 광양의 한 전문대에선 2001년부터 10년간 조폭이 총학생회장을 맡아 학생회비 4억원을 횡령했고, 경북 구미의 한 전문대를 놓고 조폭 파벌 간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폭이 학원에 진출하는 코믹 영화 같은 일이 지방 일부 대학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조폭의 먹잇감이 된 대학들은 대학이라 부르기조차 부끄럽다. 고교 졸업장만 내면 입학이 가능한 곳이 대부분이다. 정원만 채울 수 있다면 조폭이든, 누구든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조폭들 사이에선 “유흥업소 여러 개 맡아 영업하느니 대학 하나 접수하는 게 낫다”는 말도 나온다고 한다. 학기가 시작되면 등록금 같은 현금이 꼬박꼬박 들어오다 보니 조폭은 대학에 빨판을 들이대고 피를 빨듯 돈을 챙겼다.

 조폭이 활개쳤던 대학에서는 공통적으로 대학당국의 내부 감시가 미흡했다. 이들 대학에서 학생회비 결산과 감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남의 일처럼 손 놓고 있었다는 비난을 들을 만하다. 대학 당국이 관리·감독 책임을 느껴야 하는 이유다. 대학 본부는 이제라도 학생들이 낸 학생회비가 제대로 집행됐는지 철저히 조사해 등록금이 조폭의 손에 넘어가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조폭들이 독버섯처럼 번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조폭이 진출한 대학은 학칙에 따라 총학생회장 후보자에게 범죄경력증명을 내도록 돼 있으나 이 규정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대학들은 이제라도 흠결이 있는 후보자들이 총학생회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자격 규정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경찰 역시 이들 대학을 제외한 다른 대학에도 범죄집단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대학과 공조해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