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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개의 화폭에 담은 충무공의 일대기 십경도10개월만에 완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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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현충사본전 벽면에 걸릴 이충무공 십경도가 완성돼 오는 28일 제4백25회 탄신일에 첫선을 보인다.
충무공의 일대기를 십경으로 구분, 일생을 통해 가장 위대하고 극적인 장면을 담은 십경도는 작년 6월 박대통령의 특별지시로 문공부가 서울대 미대의 문학진·정창섭 교수 등에 위촉했던 것이다.
사가들의 고증을 거쳐 10개월만에 완성된 이 십경도는 21일 현충사로 옮겨져 현지에서의 전체적인 마지막 손질만 남았다.
십경도는 충무공의 위업을 숭앙케 하고 이를 후세에 길이 전승키위한 방대한 사업으로 우리 나라 사화 제작의 모델·케이스란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십경도의 제작에는 고증위원회를 구성, 수시로 회의를 소집하고 모든 문헌과 자료를 찾아 권위 있는 고증을 했다. 여기에는 김용국(충무공 연구가) 이은상(민족문화협회 회장) 조인복(국방사학회 회장) 최영철(국사 편찬위 사무국장) 최순우(국립박물관 미술과장) 강만길(고대교수) 조성도(해사교관) 양원식(고대조선학자) 석주선(의상연구가)씨 등이 참여했다.
그림은 높이3m, 너비 2m71cm 8점과 높이 3m, 너비 2m26cm 2점으로 오랜 수명을 지탱키 위해 일본에서 캔버스를 들여오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지난해 현충사 유물관의 벽화인 한산대첩도도 같이 제작했던 문·정 두 화백의 테마에 따라 캔버스의 크기를 정해야 하는데 이번 제작에서는 이미 벽의 사이즈가 정해져 있어 옆으로 길어야 할 해전도의 경우 전반적인 상황을 넣기가 어려웠다고 말하고 또 해전의 내용이 모두 다른데 충무공을 클로즈업하자니 해전이 배경이 돼버리는 등 난점이 많았다고 했다.
20여 차례의 고증을 거치느라고 밑그림 완성에만 4개월이 걸렸는데 해전신은 작년 한산대첩 때 고증을 거쳐 쉬운 편이었지만 몇 척이 참가해서 몇 척이 격파됐다는 등 상황 기록은 상세한 반면 배 모양이나 전복 등의 기록이 없었고 특히 육전의 경우는 고증이 어려웠었다고. 녹둔도 여진 격퇴 장면에서는 충무공이 말을 탔느냐 조랑말을 탔느냐에 이견이 많았으나 너무 고증에 치우쳐 빈약하게 그릴 수도 없기 때문에 결국 작품효과를 살리기 위해 말을 탄 것으로 그렸다고 했다.
①전진유희도(7∼8세) 어렸을 때부터 무인 기질을 보였던 충무공이 친구들과 전쟁놀이를 하면서 말을 타고 호령하는 장면.
②무과낙마(28세) 무과시험을 보다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치자 옆에 있는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다리를 동여매고 다시 말을 타려는 순간을 그렸다. 구경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③녹둔도 여진 격퇴(43세) 함경도 녹둔에 배치 받은 충무공이 말을 타고 여진족을 무찌르는 장면.
④좌수영 건진도(47세) 좌수영(여수)에서 좌수사로 있을 때 왜군이 쳐들어올 것을 미리 알고 진지를 구축하면서 거북선을 만들고 있는 장면.
⑤부산해전(48세) 부산 앞 바다에서 벌어진 대 해전으로 왜군진지를 기습, 많은 적선을 불태우는 장면.
⑥난중일기 쓰는 장면(48세) 한산섬 달 밝은 밤에 등잔불을 벗삼아 일기를 쓰는 장면.
⑦체포되어 상경하는 장면(49세) 충무공이 모함을 받아 수레를 타고 잡혀가는데 길가의 백성들이 붙들고 우는 장면.
⑧효행도(49세) 효성이 지극했던 충무공이 어머니 밥상 앞에 무릎꿇고 앉아 식사를 받드는 모습.
⑨명량해전(53세) 옥에서 풀려 나온 충무공이 울돌목에서 12척 남은 배를 이끌고 1백33척의 왜선을 급류 속으로 유인, 섬멸하는 장면. 적선들이 풍랑에 휩쓸리고 있다.
⑩노량해전(54세·전사) 노량해협의 최후 결전에서 적의 유탄에 맞아 『전쟁이 당장 급하니 나 죽었다는 말을 숨기어 군사의 마음을 놀라게 하지 말라』며 쓰러지는 장엄한 순간을 담았다. 멀리 명나라 배들이 참전, 혼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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