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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고독에 대한 명상 … 얼음 속에 갇힌 것 같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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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시인이 꼽는 올해의 인물은 “희망을 도둑맞지 말라”고 말한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오늘을 관통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3년 연속이다. 이원(45) 시인은 지난 3년간 미당문학상 수상 후보로 빠짐없이 거론됐다. 지금 그가 우리 시단에서 가장 성실하게, 그리고 날을 세운 채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2년 전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란 깜짝 놀랄만한 작품으로 우리 시대의 본질을 읽어낸 이 영민한 시인은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한국 문단의 단단한 줄기로 뻗어나가는 중이다.

 올해 후보작 15편에 대해 예심위원인 강계숙 문학평론가는 “감각의 구체성 위에 삶에 대한 통찰까지 더해졌다. 고독의 심연을 부유하는 느낌”이라고 평한다. 자선시 ‘우리는 지구에서 고독하다’는 ‘1000개가 넘는 전화번호를 저장한 휴대폰을 옆에 두고 벽과 나란히’ 잠들며 고독하다고 느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애송할 수밖에 없다.

 “저는 어제에도 관심 없고, 내일에도 관심 없고, 오로지 오늘에만 관심이 있어요. 직시하는 거죠. 고독이란 감정을 지나가지 않고, 고독의 처소를 관통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고독도, 그것을 뚫고 지나가는 모습도 보여 줄 수 있는 거죠.”

 고독의 처소는 매 순간에 있다. 그것은 ‘나의 고독’이 아니라 ‘우리의 고독’이다.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오로지 장대에 의지해 공중에 떠 있는 그 순간 고독이 있고(‘장대높이뛰기선수의 고독’) 생각이 발버둥치는 식물인간의 머리 속에도 고독(‘식물인간의 고독2’)은 숨어 있다.

 “그냥 ‘어느 순간이 고독하다’ 정도의 정신 상태였다면 이런 시는 안 썼을 거예요. 온전한 형태의 죽음을 경험했고 ‘정말 이렇게 깜깜한 거구나’라고 느꼈기 때문에 써도 과장은 아니겠다 싶었죠.”

 그가 스승이었던 오규원(1941~2007) 시인의 죽음 이후 한동안 시를 쓰지 못했던 것은 꽤 알려진 얘기다. 뜨거운 것을 맨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처럼 시인은 그것이 다 식은 후에야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이제 이 시인은 전보다 더 자연스럽게 시를 쓴다. 되도록 한 번에 쓰고 고치지 않으려 한다. 울퉁불퉁하고 느슨해도 그냥 두려고 한다. 그는 “오랫동안 시를 쓰면서 언어를 만지고 생각하는 데 길들여졌나 보다. ‘시는 생각이 아니다’라는 어떤 선생님의 말에 큰 충격을 받고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이원의 ‘고독의 처소’는 어디일까 궁금해졌다.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시어를 내치지 못하고 받아 적어야 하는 그 순간일까.

 “느닷없이 한 걸음도 못 걷는, 얼음 속에 갇힌 순간이 있어요. 1000개의 전화번호부가 있는데 단 한 사람한테도 안부 문자를 보낼 수 없는 순간. 바닥을 치는 거죠. 그러면 1000개의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다 봐요. 그러다 보면 이런 고독에서도 살아야겠다는 용기가 생겨요.”(웃음)

 차갑고 이지적인 시어에 반해 이원 시인은 만나보면 참 따뜻한 사람이다. 아마도 그건 오늘을 똑바로 바라보겠다는, 고독 앞에서 숨지 않겠다는, 그 용기에서 나온 온도일 것이다.

글=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원=1968년 경기 화성 출생. 92년 계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등. 현대시학 작품상·현대시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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