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오전 "우리가 뭘 잘못했나" 오후엔 "바꾸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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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비서실장 및 일부 수석비서관 교체 후 처음으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증세 논란을 빚고 있는 세제개편안의 재검토를 지시했다. 왼쪽부터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박 대통령, 박준우 정무수석. [청와대사진기자단]

정치권이 박근혜정부 경제팀을 향해 포화를 퍼붓고 있다.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에서조차 공공연히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12일 오전 국회에서 긴급히 개최된 세제(稅制) 당정협의는 새누리당과 경제팀의 불협화음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 당정협의는 박근혜 대통령이 ‘세제개편 원점 재검토’ 발언을 한 직후에 열렸다. 그래서 황우여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는 경제팀이 전향적인 세제개편 수정안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오히려 현오석 경제부총리, 이석준 기획재정부 2차관 등은 “전 세계 어디를 가져다 놔도 이번 개편안을 잘했다고 할 텐데 왜 그러나” “여야랑 국민과 토론이 부족했던 건 인정하지만 발표한 지 나흘밖에 안 됐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며 오히려 정치권에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회의에 참석했던 당 관계자는 “줄곧 경제팀이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라는 식으로 핏대를 올려 우리가 당황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새누리당은 경제팀이 민심과 여론 동향에 무감각하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당 핵심 관계자는 “지난 당정협의 과정에서 중산층 증세 문제가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손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기재부가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다”며 “연소득 3450만원을 (서민이 아닌) 중산층이라고 하는 게 경제통계엔 충실한 논리일지 몰라도 국민들의 체감 정서와는 거리가 먼 얘기였다”고 말했다. 전 국민이 관련된 세금 문제는 ‘국정원 댓글’보다 훨씬 더 정치적 파급력이 큰 사안인데 경제 논리로만 접근하다가 화를 불렀다는 얘기다.

 청와대 조원동 경제수석이 지난 9일 세제개편안을 설명하면서 “거위에게서 고통 없이 털을 뽑는 방식”이라고 말한 것도 ‘정무감각 상실’의 대표적 사례로 난타당하고 있다. 이날 새누리당 최고위에서 이혜훈 최고위원은 “경기도 안 좋은데 세 부담마저 늘어나 걱정이 많은 국민들께 상처가 되는 일이 없도록 공직자들은 언행에 각별히 유의해달라”고 했고, 유기준 최고위원도 “청와대 관계자들이 불 난 집에 기름을 부어 민심이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경제팀이 ‘개편안의 방향이 옳은데 뭐가 문제냐’라는 관료식 홍보·대처를 한 게 문제”라고 질타했다.

 새누리당에선 지난달에도 최경환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돌아가며 “정부가 우리 경제 현실을 너무 안일하게 보고 있다. 발 빠른 대응이 부족하다”며 쓴소리를 쏟아낸 적이 있다. 의원들이 지역구에 가면 온통 먹고살기 힘들다는 소리뿐인데 경제팀은 “실물지표가 좋아지고 있다”는 등의 한가한 얘기만 한다는 불만이다. 그 뒤 박 대통령이 현 부총리에 대해 재신임 의사를 비치면서 비판이 잠잠해졌지만 이번에 세제 파동으로 다시 ‘문책론’이 부상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 당직자는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외교안보 분야에서 점수를 따 지지율이 좋게 나오고 있지만 그런 건 일시적 효과에 불과하다”며 “결국 장기적으론 경제가 살아나야 집권 기반이 튼튼해질 텐데 현 경제팀의 리더십이나 비전은 심히 우려스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런 여당의 다급함과 우려는 이날 하루 동안 두 차례나 긴급 당정협의를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오전만 해도 개편안 수정에 소극적이던 현 부총리도 결국 오후 7시 “금번 세법개정안과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드린 데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서 서민과 중산층의 세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세법 전반을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노골적으로 현 부총리와 조 수석에 대한 문책을 요구했다. 김한길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세금과 예산은 정당의 정체성과 철학·정책의 지향성을 보여주는 수치”라며 “그런데 이런 (의미가 담긴) 세제를 발표하면서 대통령에게 보고도 않고 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 “결국 집권세력인 당·정·청이 무능력을 고백한 것”이라며 “재벌과 부유층을 보호하는 경제 정책을 주도한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 등 현 정부 경제 라인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정하·이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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