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걸리는 일, 공약 재원 마련하려 서둘다 패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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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오석 경제부총리(오른쪽)가 12일 오전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열린 ‘세제개편안 관련 긴급 당정회의’에 참석해 황우여 대표가 발언하는 동안 회의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왼쪽은 이석준 기획재정부 제2차관. 한편 현 부총리는 이날 오후 7시 긴급브리핑을 열고 세법개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조원동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콤비의 ‘최대 미션’은 135조원이 필요한 박근혜정부의 공약 재원 마련이다. 이들은 이를 위해 올 2월 현 부총리가 내정자 신분일 때부터 치밀한 작전을 협의해 왔다. 문제는 ‘묻지마 예산 조달’이라는 점이다. 민주통합당 홍종학 의원은 이 같은 청와대-기재부 업무 방식이 오만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월급쟁이 434만 명(전체의 28%에 해당)에게 세금폭탄을 투하한, 그야말로 오만한 박근혜정부 아니면 불가능한 세제개편안”이라고 주장했다.

 세법 전문가들은 야당 주장대로 이번 세법개정안을 세금폭탄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지만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결정이라는 데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된 데는 경제팀의 일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기재부는 현 부총리 취임 직후부터 국정과제에 맞춰 앞만 보고 달렸다.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발표 나흘 만에 원점에서 재검토에 들어간 세법개정안이 그 결정판이다. 세입 확충으로 확보해야 할 목표금액 48조원이 먼저 정해지고, 이 가운데 12조원은 이번 세법 개정으로 조달하기로 했다. 개정 작업은 지난 4월 김낙회 조세심판원장이 기재부 세제실장으로 옮겨오면서 본격화했다. 국내 최고의 조세 전문가로 꼽히는 그가 기재부 조직개편으로 세제실까지 관장하게 된 이석준 제2차관의 넓은 시각, 조원동 경제수석의 빠른 두뇌와 만난 것은 완벽한 ‘작품’의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지난 8일 공개된 세법 개정안은 결정적인 결함을 드러냈다. 세액공제 도입이라는 큰 방향은 잘 잡았으나 세 부담이 늘어나는 소득 기준이 3450만원부터여서 ‘조세저항’이라는 복병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이날 개정안 설명에 나선 현오석 부총리-이석준 2차관-김낙회 세제실장은 하나같이 ‘세입기반 확충’과 ‘과세형평 제고’를 강조했다. 이는 ‘소득 있는 곳에는 세금 있다’는 개세주의 원칙을 최대한 실현하면서 국민이라면 누구나 골고루 세 부담을 지게 한다는 뜻이었다. 원론적으로 맞는 얘기다.

 하지만 패착은 국민 정서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재부는 3450만원을 기준으로 정한 근거를 언론이 요구하자 “이들이 상위 28%에 해당한다”는 점 이외에는 설명을 하지 못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2~3년 동안 간격을 두고 서서히 조절해야 하는 사안인데 너무 급하게 발표했다”며 “1500만 근로자 전체를 놓고 상위 28%를 설정하니까 3450만원 소득자가 고소득이 돼버리는 어색한 현상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실 중간 부분의 부담을 줄여줬으면 좋은데, 전체에 대해 단일 세율을 적용하다 보니 인위적으로 중간만 세 부담을 줄여줄 수는 없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목표 금액 조달이라는 원칙론에 빠진 나머지 경기 침체로 지갑이 얇아진 중산층이 반발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지 못한 것이다. 현 부총리는 12일 긴급 브리핑에서 “서민·중산층의 세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원점에서 세법 전반을 재검토하겠다”며 “고소득 자영업자의 세금 탈루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고 사후약방문을 내놓았다.

 기재부가 정책 목표에 꿰맞추려다 동티가 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8년 세제개편 때는 연소득 8800만원까지를 중산층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부자 감세가 사실상 중산층에 집중됐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중산층 소득을 이같이 높여 제시한 것이다. 이번에는 5500만원까지 중산층으로 분류하면서 고소득자에 증세가 이뤄졌다는 점을 내세웠다.

 올 초 경제성장률 전망 때도 편한 대로 통계를 제시했다. 기재부는 박근혜정부가 출범하자 성장률 전망치를 2.3%라고 발표하면서 불과 3개월 만에 0.7%포인트를 하향 조정했었다. 이번에 세수 효과도 12조원을 2조5000억원인 것처럼 설명하면서 세 부담이 실제보다 적은 것처럼 보이려 한 점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세종=김동호 기자,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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