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이중 잣대 들이미는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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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에는 쇄신을, 이라크에는 총구를 들이미는 방식으로 이슬람 세계에 민주주의를 도입하려는 급진적인 정책을 선보인 부시 미국 행정부가 모순과 위선 덩어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사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협력자인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5년 넘게 독재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는 무샤라프에게 부드러운 충고 몇 마디만 했을 뿐이다.

부시 행정부 비판자들의 기세는 맹렬하다. 피터 페이너트 뉴퍼블릭 편집장은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에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미국의 밑바닥에는 도덕적 위선이 깔려 있다"며 "우리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의 독재자들에게는 부드럽게 대한다"고 비난했다. 기고가 토마스 프리드먼은 "부시 행정부는 미국에 반대하는 권위주의 정권에게만 민주주의를 주장한다"며 불만을 표했다. 프레드 히아트 워싱턴 포스트 사설면 편집장은 더 폭넓은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냉전에서처럼 세계 각지에 전부 개입하지 않는다면, 즉 이라크뿐만 아니라 중국의 민주주의에도 몰두하고, 중동뿐만 아니라 체첸의 평화에도 몰두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이슬람 세계의 자유를 위한 냉전에서 승리는커녕 전쟁을 수행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우리 미국은 냉전에서 어떻게 승리했을까? 우리는 냉전에서 싸워 이겨 수천만 명을 해방시켰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이는 차별적으로(원했던 방식은 아니지만) 특정 지역에서 부자유를 용인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럴까? 세계적인 규모에서 자유를 위한 큰 전쟁을 이기기 위해서였다. 지금 우리는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이집트의 무바라크, 사우디의 왕자들을 '너그럽게' 대우한다. 과거 우리는 칠레의 피노체트, 필리핀의 마르코스, 이란의 샤, 자이르의 모부투, 남베트남의 장군들을 부드럽게 대했다.

이유는? 첫째, 당시 이들의 여러가지 비행에도 불구하고 이 국가의 국민들에게는 더 나은 대안이 없었다. 이 나라들에서 독재주의의 대안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인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우리 미국의 결함 투성이 친구들의 실권에 따른 비극의 역사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캄보디아의 대학살, 베트남의 보트피플, 이란의 살인적 신권주의, 자이르의 파멸적인 전쟁이 그랬다.

둘째, 우리 미국은 나치즘, 공산주의 등 자유에 대한 세계적인 위협에 맞선 세계적인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러한 독재자들을 필요로 했다. 우리는 히틀러를 쳐부수기 위해 20세기 최대의 악한인 스탈린과 하나가 되지 않았던가? 이 동맹에 대해 필요성 차원을 넘어 윤리성 자체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것은 차악의 원리다. 처칠이 "악마가 히틀러와 사이가 좋지않다면 나는 악마와 동맹을 맺겠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악마와의 동맹은 일시적일 경우에만 정당하다. 히틀러가 패배했을 때 우리는 스탈린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청산했다. 40년 후 공산주의가 쇠퇴하자 미국은 마르코스를 끌어내리고 피노체트를 제거하도록 도왔다. 우리 미국은 동맹을 정당화시키는 조건 두 가지가 사라지자 이 독재자들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즉 세계에 대한 소련의 위협이 줄어들고 국내에서 민주적 대안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러한 구별은 현재도 똑같이 적용된다. 무샤라프는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를 지지할 필요가 있다. 무샤라프는 우리가 벌이고 있는 급진 이슬람과의 사투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샤라프 정권 전복은 파키스탄에 더 큰 혼란과 고통을 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사우디를 놓고 말하자면, 사우디 정권은 심각하게 부패해 있고 상당히 억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 국가들을 고려하면 현 정권이 최악은 아니다. 조만간 우리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혁, 혹은 혁명을 원할 것이다. 불행히도 현재 그곳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단순히 의지만 믿고 그들에게 맡길 수 없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우리는 기적이 일어나 혼란을 없앨 것이라는 기대 하에 정권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없다. 우리가 즉시 전세계에 공통적으로 민주주의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 자신의 원칙을 배반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이상적이다. 미국은 매일 무모한 간섭과 오만한 일방주의로 공격을 받는다. 그리고 동시에 지구 상의 모든 폭정을 일방적으로 제거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친한 독재정권에게는 민주주의를 고양시키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니다. 우리는 이란과 이라크 등의 국가들에서 정권 교체를 유도해 민주주의를 추진하려는 데 반해 우호적인 독재 국가들에서는 불안정한 정도에 따라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우리는 뒤이을 수 있는 대혼란 때문에 아직은 감히 정권 교체의 위험을 감수하지 못한다.

뉴욕 타임스는 '독재자들과 놀아나는' 미국을 비난한다. 사실이다. 우리 미국은 그들과 놀아난다. 그리고 사과도 하지 않는다.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니카라과의 아나스타시오 소모자에 대해 "그는 '개자식'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개자식'"이라고 말하면서 구했던 것 이상의 사과는 없다.

루즈벨트는 성숙했다. 그는 선택을 했다. 그는 독재자들을 한 번에 한 명씩 제거했다. 그는 우리가 완벽한 세상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는 '개자식들'로 가득 찬 국제 무대에서 구분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Charles Krauthammer (CNN) / 이인규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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