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희빈' 김혜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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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더워."

김혜수(33.사진)는 옷 속에 손을 넣어 '핫팩' 6개를 쓱쓱 떼어냈다. 바지는 체육복 차림이었다. 촬영 직후 인사동의 한 식당, 그녀는 먹는 것도 주위의 이목을 신경쓰지 않았다.

"꾸미는 걸 싫어해요. 공주 역할을 하기에는 제가 볼륨이 좀 크잖아요? 성격은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이고요. 요즘 조금 의기소침해지긴 했지만…."

조금이 아니라 어쩌면 그녀는 데뷔 이래 가장 긴 시련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파란 신인 시절이라면 차라리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을 믿고 출발한 KBS 사극 '장희빈'이 추락을 거듭하면서 김혜수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방영 초기 20% 가까운 시청률을 보였던 '장희빈'은 최근 SBS '올 인', MBC '눈사람'에 밀려 시청률이 10% 이하로 떨어졌다.

게다가 네티즌들은 그녀를 향해 "캐스팅이 잘못됐다""요부(妖婦)가 아니라 달덩이 같다"는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오죽하면 가족들이 제가 인터넷에 들어가는 걸 극구 말리고 있어요. 그래도 전 꼬박꼬박 네티즌들의 반응을 읽어요. 아프고 때론 억울할 때도 있지만 참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 위해서요."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치지만 극에 쏟는 그녀의 열정은 주변에서 놀랄 정도다. 드라마 시작 전 "영화출연 약속을 어겼다"며 고소까지 당했던 그녀다.

촬영은 일주일 중 사흘이지만 다른 출연 일정은 일절 잡지 않는다. 쉬는 날은 자료를 찾고 연기 연습을 하며 보낸다.

최근 읽은 책은 세계 악녀에 관한 시리즈물. 눈을 감고 역사 속 장희빈과 대화를 나누는 그녀의 모습을 촬영장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장희빈과 인현왕후는 남자 관점에서 묘사돼 왔어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에 기초해서요. 하지만 궁중생활은 여자에게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요? 방에 틀어박혀서 하루종일 님만 기다려야 하는…. 장희빈은 신분계급에 관한 한 앞선 의식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에요. 앞으로 의식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장희빈을 보여드릴 거예요. 이건 시청률이 잘 나오고 못 나오고와 관계 없는, 일종의 소명이에요."

한번 시작한 그녀의 말은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궁중에서 여자의 머리 위에 얹었던 각종 장식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혈 중의 하나인 백회를 누르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것이다.

"머리가 무거우니까 실제로 힘을 못 쓰겠어요. 혹시 여자들의 기를 누르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어요. 물론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번 주를 계기로 그녀는 극 중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다. 종 4품(숙원)에서 정 2품(소의)으로 품계가 올라가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인현왕후와 그녀 간의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전개된다.

"이제부터 정말 재미있어지니까 꼭 봐주세요. 조기종영요? 전 끝까지 최선을 다할 거예요.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싶어요. 아직 5분의 1 밖에 지나지 않았는걸요."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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