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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주의 정권 퇴출 도미노 … 이집트 이어 튀니지도 대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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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아랍의 봄’ 원조인 튀니지가 ‘제2의 이집트’가 되고 있다. 피플 파워에 의해 장기 독재자를 축출한 뒤 자유 선거로 들어선 이슬람 정권이 이집트에서처럼 붕괴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달 말 시작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거의 매일 벌어진다. 야권과 시위대는 온건 이슬람 정당인 엔나흐다당이 주도하는 연립정부의 퇴진과 거국내각 구성, 의회 해산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에는 제헌의회 활동마저 잠정 중단됐다. 무스타파 벤 자파르 제헌의회 의장은 “정부와 야당의 대화가 재개될 때까지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벤 자파르의 세속주의 좌파 정당 에타카톨은 CPR당과 함께 최근 연정에서 탈퇴했다.

 튀니지의 정치 분석가 소피안 벤 파르하트는 “이집트 시나리오가 남의 일이 아니다”며 “위기가 지속되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8일 전했다. 2011년 1월 독재자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을 몰아내는 데 앞장선 야당 행동가 소피안 초우라르비도 “대규모 시위와 의회 활동 중단 결정은 튀니지의 이집트화를 촉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이집트에선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이은 군부 쿠데타로 무슬림형제단 출신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실각했다.

 튀니지 집권당 엔나흐다당은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의 분파다. 2011년 10월 제헌의회 선거에서 37%의 득표율로 제1당이 됐다. 하지만 집권 후 정식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절차를 신속히 이행하지 않아 비판을 받아 왔다. 실업률과 물가가 치솟아 경제 불안이 가중되면서 국민의 불만은 커져가고 있다. 쿠데타 직전 이집트와 비슷한 상황이다.

 엔나흐다당은 야권이 요구하는 의회 해산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10월 말까지 헌법과 선거법을 확정하고 12월 17일 총선을 통해 민주화 혁명을 매듭짓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5일엔 의회 해산 찬반을 묻는 국민 투표를 제안했다. 야권은 시간끌기용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야권 지도자들의 잇따른 암살도 튀니지 정국을 긴장으로 몰고 있다. 좌파 정치가인 초크리 벨라이드와 무함마드 브라흐미는 각각 2월 6일과 6월 25일 암살됐다. 의원 70명은 야권 지도자 2명의 암살에 항의해 제헌의회에서 철수했다.

 튀니지 군부는 무르시 대통령을 몰아낸 이집트 군부와는 달리 내정에 간여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대신 60만 명의 회원을 거느려 정치적 영향력이 적지 않은 노총 UGTT가 의정 활동 중단과 야권 시위를 지지하고 있다.

정부 퇴진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튀니지 타마로드(반란) 운동은 전체 인구 1000만 명 중 140만 명의 서명을 확보했다. 야권이 주도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다. 나디아 유스피(25)는 “몇 달만 있으면 선거를 하는데 그때까지 기다리면 되지 않나”라며 “엔나흐다당도 나쁘지만 야당은 더욱 나쁘다”고 비판했다.

한경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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