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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양보하는 쪽이 민심을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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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잊지 마세요. 당신도 누군가의 영웅입니다’. 서울시청 외벽에 걸린 문구다. 하지만 요즘 시청 안팎에서 벌어진 여야의 행태를 보면 두 당만은 ‘당신’의 예외인 듯하다.

 민주당은 어제도 장외투쟁을 했다. 이틀째 서울광장에 진을 쳤다. 김한길 대표는 “새누리당이 국민과 국회와 민주주의와 역사를 우롱했다”고 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도 “새누리당이 민주당을 내몰았다”며 “얼마 동안 (장외투쟁)할지 순전히 새누리당에 달렸다”고 했다.

 비슷한 시간대 김성태 의원 등 새누리당 일행 50여 명이 서울시청으로 몰려들었다. 최근 안전사고를 두고 민주당 소속인 박원순 시장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였다. 이들은 출입을 제지하는 청원경찰들과 거친 몸싸움을 벌였다. 그 무렵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은 국회 밖 정당인가, 촛불 정당인가”란 식의 비판을 쏟아냈다.

 이처럼 국가정보원 댓글사건과 국정원의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국정원 국정조사가 맞물린 여야 간 대치가 몇 달째 지루하게 이어지며 이곳저곳 생채기를 내고 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민생을 내팽개치고 있다”고 비난하는 데 몰두한다. 국조가 무산되길 바란 양 뒷짐 지고 말이다. 민주당도 한심한 상태다. 오늘 청계광장에서 대국민보고대회를 연다는데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열리는 촛불집회와 합쳐질 수밖에 없다. “정당과 사회운동의 차이를 혼동한다”던 불과 넉 달 전의 자성(自省)을 잊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야 일각에서 협상론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장외투쟁의 이유가 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등 핵심 증인의 국조 출석에 대해 새누리당 내에서도 “동행명령장을 발부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민주당에서도 장외투쟁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있다. 국회를 버려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불씨를 살려야 한다. 그게 여야가 공멸의 길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도 야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파(無黨派)가 국민의 절반에 육박하는 43%였다. 2003년 12월 이후 처음이라는데 당시 열린우리당 창당과 총선이 겹치면서 대규모 정계 개편이 있었다. 지금도 안철수 신당의 원심력이 작동하는 중이다. 여도 야도 위기다.

 대치국면에선 양보하는 자가 결국 국민의 마음을 산다. 완승하려다간 자칫 완패한다.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한 발씩 물러나라. 국정의 안정적 운영이란 책무를 진 새누리당은 작은 승부에 집착해 큰 승부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와 달리 민주당의 용인 없이 단 하나의 안건이라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수 있나. 민주당도 야당이 가장 존재감을 발휘할 곳이 국회란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장외투쟁의 역사적 효용은 다했다.

 여도 야도 정치를 해야 한다. ‘누군가의 영웅’은 못 되어도 ‘모두의 악인(惡人)’이 되어선 곤란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