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어이없는 대구 지하철 참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신병을 비관한 50대 남자의 방화로 발생한 대구지하철 대참사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비극이다.

뇌졸중 후유증을 앓아온 한 정신.지체 장애인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 '아무나 죽어라'식 범죄가 엄청난 사회적 재앙을 초래한 것이다. 최근의 국제 정치.경제.사회의 요동치는 국내외 정세와 더불어 우리의 불안 심리를 한층 가중시킬까 걱정이다.

피해가 컸던 것은 전동차 내부 구조물이 타면서 유독가스를 뿜어낸 데다 때마침 도착한 반대편 철길의 전동차가 정전으로 운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쪽 전동차는 화재 수분 후 현장에 진입했다고 하니 지하철 종합사령실에서 미리 정지시켰더라면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지하철 당국이 초기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책임이나 인재(人災)의 성격은 없는지 철저히 가려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은 1995년 옴 진리교 신자들이 지하철 안에 맹독성 사린가스를 뿌려 사망 11명을 포함해 5천5백여명의 사상자를 내 일본을 공포에 빠뜨린 사건과 비교된다. 당시 모방 범죄가 잇따랐던 점을 감안해 끔찍한 반사회적.자포자기적 모방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할 것이다.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다면서도 언제까지 이 같은 원시적 안전사고에 시달려야 하는지 참으로 참담하다. 지하철 등 다수가 모이는 밀폐장소에 대한 보안검색 강화, 위험 물품의 지하철 반입 통제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하철 역사와 객차의 유독가스 배출물을 무독성으로 바꾸고 정전에 대비한 비상 발전시설을 갖추는 것도 급선무다. 무엇보다 평상시 방송으로 승객들에게 비상사태시 대피 요령을 안내해야 한다.

특별 재난지역 선포 등 사상자 보상과 부상자 치료에 소홀함이 없도록 당국의 배려도 절실하다. 정신장애인들의 실태 파악과 적절한 보호.관리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도 강화돼야 한다.

전국의 지하철 하루 승객은 6백50만여명에 이른다. 서울을 비롯해 다른 곳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시민들이 지하철을 안심하고 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