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바깥 떠도는 '분노의 아이들' 품어줘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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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의 대표적인 ‘사회참여파’인 강해윤 교무. 경기도 용인에 은혜학교를 세워 소년원 출신 청소년을 교육한다. 강 교무는 “문턱 낮은 학교를 만들어 어떻게든 중·고등학교 졸업장을 주려 한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원불교에서 운영하는 경기도 용인의 은혜학교. 이 학교 현관이나 복도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오늘은 내 인생 최고의 날’, ‘평범한 하루의 연속이 비범을 만든다’….

절도·폭행 … 말썽꾸러기 중고생 25명

 말 그대로 평범한 구호처럼 보이지만 학교의 실상을 알고 나면 다르게 느껴진다. 은혜학교는 소년원 출신을 받는다. 심한 경우 차량 절도, 집단폭행 등을 저질러 더이상 받아주는 학교가 없는 아이들이다. 현재 재적 인원은 중·고등학생 합쳐 25명. ‘6호 처분’이라고 부르는 아이도 5명 있다. 소년원에 가야하는 9·10호 처분보다는 약하지만 은혜학교 같은 곳에서 6개월 이상 지내야 하는 말썽을 부린 아이들이다. 결코 평범하지 않고, 최악의 날의 연속인 아이들에게 위의 구호는 단순한 구호 이상이다.

 원불교에서 이런 학교를 설립한 건 순전히 강해윤(55) 교무의 공이다. 그는 1990년 출가 이후 단 한순간도 사회 교화 현장을 떠난 적이 없다. 도시빈민 교화, 교도소 교정(矯正)교화 등을 거쳐 2010년 은혜학교를 설립했다. 2011년 처음 입학한 아이 6명이 어느덧 고3이 돼 내년 초 졸업한다. 지난달 28일 강 교무를 만났다. 그는 학교가 소속된 법인인 전산학원의 상임이사다.

 강 교무는 가장 어려운 일을 묻자 대뜸 “인내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은혜학교는 교육법상 각종학교다. 학력을 인정해 주지만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지는 않는다. 때문에 외부 후원금이 필수적이다. 강 교무는 “학생들과 함께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교사 6명은 그야말로 최저임금 수준의 급료를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아이들 때문에 순간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한 것이다. 

 강 교무는 “아이들에게나 선생에게나 학교는 지옥 같은 곳”이라고 했다. 자신들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선생님을 처음 만난 아이들은 수시로 교무실에 찾아와서 놀아달라고 보챈단다. 말썽은 부릴대로 부리면서다. 기숙사 내 흡연은 약과다. 주말에 외출을 함께 나간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복귀 시점인 월요일 오전까지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서울로 올라가 ‘사고를 쳐’ 경찰서에서 찾아오는 일도 있다.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교사들이 찾으러 나간다. 수업 일수를 채워야 졸업할 수 있어서다. 전화 통화가 돼 아이들의 소재 파악만 되면 출석한 것으로 친단다. 최대한 규정을 느슨하게 적용해 아이들을 학교에 붙잡아 두기 위해서다. 강 교무는 이런 은혜학교를 “학교 바깥의 학교”로 표현했다. 어떻게든 졸업장을 주려는 교사들과 그에 마지 못해 동의한 아이들의 실낱 같은 공감대 위에 학교는 위태롭게 서 있다.

교무실에 와서 놀아달라 보채는 아이들

 왜 그렇게 졸업장이 필요한 걸까. 강 교무는 “교도소 교화를 하며 평생 분노에 휩싸여 사는 사람을 많이 봤다. 그런 이들이 많으면 우리 사회가 불안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돼 아이들의 온전한 사회복귀에 도움이 된다는 거다.

 강 교무는 원래 순천대 79학번이다. 학생운동을 하다 제적된 후 85년 원광대에 입학해 뒤늦게 출가했다. “깨달음을 얻겠다는 거창한 목표보다 뭔가 헌신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사회 교화에 뛰어든 건 대학시절 우연히 서울 신림동 달동네를 경험하면서다. 휘황찬란한 대도시의 그늘에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가 버섯처럼 돋아나 있었다. 강 교무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좁은 공간에 대가족이 모여 사는 걸 보고 충격이 컸다”고 했다. 그는 “누군가 저 사람들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 누군가는 역시 종교인이다. 성직자야말로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난한 사람의 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 교무는 신림동에서 7년을 보냈다. 직접 삽을 들고 쓰러져 가는 달동네 주택 보수를 도왔다. 97년 일대가 재개발되며 달동네가 철거되자 지금 은혜학교의 전신인 은혜의집 아이들과 함께 용인에 내려왔다. 

어떻게든 졸업장은 줘야 사회 복귀하죠

 그는 현재 은혜학교 외에 원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원불교 내 참여 단체인 사회개벽교무단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매주 월요일이면 전남 영광에 내려가 21㎞씩 걷는다. 원자력 발전소 안전을 촉구하는 시위다. 강 교무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면 기꺼이 하다 보니 여러 일을 맡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원불교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는 보은(報恩)이다. 천지·부모·동포·법률 등 네 가지 은혜에 항상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실천강령이다. 마침 강 교무의 법호가 보산(報山)이다. 정교한 교리 연구보다 현장에서 땀 흘리며 교리를 실천하는 게 강 교무의 영성이었다.  

용인=신준봉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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