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미디어에 폭력이 넘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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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매스 미디어는 스타를 만들고 스타는 뉴스를 만든다.

요즘 한 인기 연예인의 가정 폭력사건이 뉴스거리가 됐다. 신문과 방송 등 각종 매체에서 뉴스로 혹은 프로그램으로 취급하면서 가정폭력 문제가 새삼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사건에 대한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이 가정폭력을 포함해 우리사회 전반에 만연한 폭력성에 대한 민감성을 높이고, 생각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고 바란다.

*** 폭력이 축제로 바뀌는 세태

경찰 통계에 의하면 2001년 가정 폭력은 전년도에 비해 12.3% 증가했다. 살인, 강. 절도 등 총 범죄 발생건수는 2001년 1백86만6백87건으로 전년도에 비해 8.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 등 소위 5대 주요 범죄 역시 매년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폭력이나 범죄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특정한 경우에나 행하는 특별한 사건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학교폭력은 자녀를 둔 모든 이의 관심사가 됐고, 최근 보도된 장기 매매사건으로 그 심각성의 정도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생일.만남 등의 축하의 뜻으로도 친구들이 단체로 구타하는 '생일 빵''1백일 빵' 등이 청소년들 사이에 행해진다니 이쯤 되면 이들에게 폭력은 이제 축제의 의미가 되기도 하는 듯하다.

연령과 계층에 관계없이 행해지는 유흥비 마련 카드빚 관련 범죄에서는 폭력을 문제 해결 또는 욕구 충족의 손쉬운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마저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는 매일 보고 듣고 접하는 정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의 입맛이 자주 먹는 음식에 의해 서서히 길들여지듯 우리의 의식과 태도는 자주 접하는 정보에 의해 배양된다. 이런 이유로 정보를 생산.유통하는 미디어 산업을 '의식산업'이라 일컫는다.

많은 연구결과 사회폭력과 미디어 폭력 간의 밀접한 관계를 증명하고 있다.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정보가 공격적 성향을 자극하고 배양하며, 나아가 폭력에 대한 민감성과 자제력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그 결과 폭력적 정보에 노출될수록 폭력적 태도와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폭력적 정보에 노출될수록 세상을 어둡고 비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폭력적 행위와 비관적 세계관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현실과 환상의 구분이 모호한 어린이 청소년의 경우 이러한 영향은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사회폭력의 근본적 이해와 접근은 정보환경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의 정보환경은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폭력의 정도가 높다. 청소년들이 선호하고 쉽게 몰입하는 컴퓨터 게임이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사실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유료 온라인 게임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해 90% 이상이 대량 학살.신체 파열과 같은 폭력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온라인에서의 살인행위 (player killing)를 채택한 것도 83%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 매체 경쟁탓 자극 더해가

TV의 경우 1999년 자료에 의하면 시청자들은 10분당 1.7건의 폭력적 내용에 노출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폭력 유형으로는 폭행 등 대인 폭력이 6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물이 흥행기록을 수립하고 있는 영화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미 세계가 경험하고 있듯이 다양한 매체가 등장해 매체 간 경쟁이 심화될수록, 콘텐츠 유통이 국제화될수록 선정성과 폭력성의 정도는 증가된다.

이 같은 정보환경에 여하히 대처할 것인가는 정보 소비자 개개인의 과제인 동시에 사회적 과제이기도 하다. 그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의식산업인 매체 정책의 중요성과 딜레마가 동시에 증대되는 지극히 도발적인 매체 환경이다.

李京子(경희대교수·언론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