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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 만의 그랜드슬램, 설레는 인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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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리코 브리티시여자오픈 출전을 앞두고 있는 박인비(앞줄 왼쪽)가 30일(한국시간)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의 스윌컨 브리지에서 경쟁자와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다. 박인비는 이 대회에서 83년 만의 그랜드 슬램에 도전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미셸 위(미국)·펑샨샨(중국)·미야자토 미카(일본)·베아트리스 레카리(스페인)·박인비·신지애·청야니(대만)·나탈리 걸비스(미국)·카트리오나 매튜(스코틀랜드)·모리야 주타누가른(태국)·찰리 헐(잉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스코틀랜드)=게티이미지]

1930년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열린 브리티시 아마추어 선수권.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출신의 보비 존스(당시 28세)는 매치플레이로 치러진 결승전에서 잉글랜드의 로저 위더레드(당시 31세)를 7홀 차로 대파했다. ‘골프의 성지’ 올드 코스에서 들어 올린 존스의 우승 트로피는 새로운 골프 역사의 신호탄이 됐다. 존스는 이후 디 오픈, US오픈, US아마추어 선수권을 차례로 제패하면서 한 시즌 4개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이는 아널드 파머(84)도, 잭 니클라우스(73)도, 타이거 우즈(38·이상 미국)도 넘어서지 못한 유일무이한 대기록으로 살아 있다.

 그러나 83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새로운 역사가 탄생할 수 있다. 여자 골프 세계랭킹 1위 박인비(25·KB금융그룹)가 8월 1일(한국시간) 올드 코스에서 개막하는 리코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서 83년 만의 그랜드 슬램에 도전한다. 올 시즌 3개 메이저 대회에서 연속 우승한 박인비가 한 시즌 그랜드 슬램(캘린더 그랜드 슬램)이라는 대기록을 향한 마지막 관문 앞에 서 있다.

 존스가 이룬 업적과 박인비의 그랜드 슬램은 무게감이 다르다. 존스는 메이저 대회의 개념이 확실치 않았던 시대에 아마추어 2개 대회를 포함한 4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그러나 현대 골프에서는 한 시즌에 메이저 대회 4개를 휩쓴 선수는 남녀를 막론하고 단 한 명도 없다.

 29일 오전 스코틀랜드에 도착한 박인비는 첫날부터 이른 아침 연습장에 나왔다. 오전 6시 골프장에 도착해 오전 8시 라운드에 나섰고 프로 골퍼 출신인 약혼자 남기협(32)씨와 코스 공략을 상의했다. 박인비는 30일에도 오전 6시30분 골프장에 도착해 곧장 연습장으로 향한 뒤 오전 8시30분부터 프로암 대회를 소화했다. 박인비는 과거에도 올드 코스를 경험한 바 있다. 루키였던 2007년 이 코스에서 열린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 출전해 공동 11위(3오버파)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다. 박인비는 “수많은 곳에서 라운드를 해 봤지만 올드 코스는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쉬운 코스보다는 어렵고 변별력이 있는 곳을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코스”라고 했다.

 남자 메이저 대회인 디 오픈을 28차례나 개최한 올드 코스는 아무에게나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20승을 기록한 도그 샌더스(80·미국)는 1970년 열린 디 오픈 18번 홀(파4)에서 2m도 안 되는 파 퍼팅을 놓쳐 잭 니클라우스에게 연장 끝에 패했다. 84년 대회에서는 톰 왓슨(64·미국)이 17번 홀 보기로 버디를 기록한 세베 바예스테로스(스페인·2011년 작고)에게 무릎을 꿇었다.

 올드 코스는 페어웨이가 넓고 평평해 언뜻 보기에는 평이해 보이지만 질긴 러프와 깊은 벙커가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 그린은 상대적으로 큰 편이지만 바람이 심해 공을 올리기 쉽지 않다. 장거리 퍼팅도 많아 아마추어처럼 3퍼트도 속속 나온다. 그러나 올해 대회에는 아직까지 예년에 비해 기온이 높고 바람은 잠잠하다. 바람에 강한 편인 박인비에게는 반갑지만은 않은 변수다. 박인비는 “날씨가 너무 좋아 전혀 다른 코스에서 라운드를 한 느낌이었다”며 “그러나 언제 어떻게 날씨가 변할지 모르는 코스이기 때문에 바람에 대비한 100야드 안팎의 펀치 샷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고 말했다.

 박인비의 컨디션은 80% 정도다. US 여자 오픈 우승 뒤 살인적인 일정에 시달린 그는 컨디션이 정상은 아니다. 그랜드 슬램 도전이라는 부담감도 넘어야 할 벽이다. 이번 대회에 심리코치인 조수경 박사를 동행한 박인비는 “ 부담이 작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일반적인 대회 때와 같은 마음으로 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는 그랜드 슬램을 기대하며 박인비가 올해 우승한 3개 메이저 대회(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 US여자 오픈)의 우승 트로피를 대회장까지 공수했다. LPGA 관계자는 “박인비가 우승하면 18번 홀 스윌컨 브리지(Swilcan Burn Bridge)에 4개의 트로피를 전시하고 포토콜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스윌컨 브리지는 약 700년 전 개울을 건너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수많은 골프 전설이 거쳐간 ‘전설의 다리’ 다.

 박인비는 30일 오전 스윌컨 브리지에서 미리 포토콜 행사에 참석했다. 지난해 우승자 신지애(25·미래에셋)를 비롯해 전 세계랭킹 1위 청야니(24·대만)와 나란히 제일 첫 줄에 서서 포즈를 취했다. 포토콜 30분 전까지 굵은 빗줄기를 뿌렸던 하늘이 순간 맑게 갰다. J골프가 8월 1~2일 1·2라운드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30분, 3일 3라운드는 오후 10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2시, 4일 최종 4라운드는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생중계한다.

세인트앤드루스=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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