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與野 외국사례 왜곡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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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국회 본회의에선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설전을 벌였다. 대북 송금 처리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다.

양쪽 모두 외국의 예를 들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이제는 덮고, 정치적 해결을 하자"고 했다. 한나라당은 "특검으로 진상을 규명하고 문책하자"고 맞섰다.

먼저 동원된 사례가 동.서독 간 통일 과정이었다. 민주당 전갑길(全甲吉)의원은 "서독은 동독에 억류된 정치범들을 석방시키고 대가를 지불했다.

이 과정에서 서독 교회를 통한 비밀 거래가 있었다.서독 국민들은 통일 후에야 진실을 알았다"고 주장했다. 全의원은 특검제 도입 요구를 "비이성적, 집단적 광기와 무지"라고 비난했다.

서독이 1989년까지 약 35억마르크를 동독에 현금으로 주고 3만3천7백여명의 동독 정치범을 사들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는 '공개된 비밀 지원'이었다. 정치권에서 합의가 이뤄졌고, 언론은 보도금지 요청에 협력했다.

같은 과정을 두고 한나라당 김용균(金容鈞)의원은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金의원은 "서독의 콜 총리는 동독에 절대 현금을 지원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했다"고 주장했다. 역시 사실과는 차이가 있다.

미국 사례도 아전인수식 주장에 인용됐다. 민주당 송영길(宋永吉)의원은 "레이건 행정부 때의 '이란-콘트라'사건 당시 노스 중령만 옷을 벗고, 나머지는 정치적으로 해결됐다"고 했다.

대북 송금사건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하지만 이란-콘트라 사건에서 미국은 특검을 도입했다. 14명이 기소됐고, 11명이 유죄 평결을 받았다.

의원들이 발언에 나선 이유는 여론을 유리하게 돌리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을 왜곡해서는 그 뜻을 이루기 힘들 것이다.

고정애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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