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새정부 새만금의 운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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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시민단체와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우호적 관계가 지속되며 시민운동가들이 인수위에 이어 새 정부 요직에 속속 진출하고 있지만, 유독 환경단체 사람들은 盧당선자에 대해 유감이 많은 것 같다.

인수위에 환경 담당자가 전문위원 한명에 불과하고 새 정부의 10대 국정 과제에도 빠지는 등 환경문제가 소홀히 취급되는 데다 각종 환경 현안에 대한 대응도 시원치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다. 지난달엔 "노무현 정부가 반(反)환경적 정부가 될 것을 우려한다"는 비판 성명도 나왔다.

새 정부의 환경철학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주목받아온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해 盧당선자가 지난주 전북지역 토론회에서 입장을 밝힌 이후 환경단체 사람들은 "이제 싸울 수밖에 없다"며 벼르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최열 사무총장은 한 인터뷰에서 "盧당선자가 환경문제에 철학적 바탕이 없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盧당선자는 전북 토론회에서 "새만금 사업은 중단하지 않겠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는 이어 "그동안 상황이 바뀐 만큼 간척지를 농지로 전환하는 사업 내용은 재조정하겠다"고 말했다.

종래의 '재검토' 입장에서 진일보한 말은 농지 조성을 목적으로 한 새만금 사업의 타당성을 부정했다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새만금 사업이 더 이상 불필요하다는 것을 盧당선자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공사를 중단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공박한다.

새만금 개발은 여의도 면적의 1백40배에 달하는 1억2천만평의 농지와 담수호를 만드는, 우리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간척사업이다. 사업이 진행된 지난 12년 동안 '식량안보 차원의 우량 농경지 확보'는 일관된 논리였다.

그러나 쌀이 남아돌아 보관비용으로 엄청난 돈이 들어가고 농사를 짓지 않는 휴경농지에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盧당선자가 농지 조성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합리적 판단이다.

盧당선자는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대규모 갯벌을 잃을 새만금 사업에 무조건 동의할 수 없다.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며 환경을 옹호했다.

이제 와서 그가 개발로 입장을 바꾼 것은 그동안 투입된 1조4천억원이나 주민들의 반발 등을 고려한 정치적 선택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盧당선자의 의중은 무엇이고, 새만금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환경단체들은 盧당선자가 "얼마나 간척.개발하며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 부분에 주목한다. 간척지를 산업단지 등으로 전용하겠다는 뜻이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실제로 전북도 주변에선 첨단산업 중심의 산업단지나 환황해권 물류단지, 관광레저 단지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안엔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방조제를 완성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전북 군산과 부안 사이 33㎞를 잇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 공사는 현재 4.5㎞만을 남기고 있다.

대안을 마련한다며 시간을 끄는 사이 목표대로 2006년까지 방조제가 완성되면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2만ha의 새만금 갯벌은 사라지고 만다. 바닷물의 드나듦이 끊긴 호수의 생태환경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는 시화호의 예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시민단체들이 우선 방조제의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이 같은 위기감에서 나온다. 명지대 김석철 건축대학장이 제시한 '바다도시'안이 관심을 끄는 것도 방조제 완성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와 종교인들은 19일부터 서울 인사동 문화마당에서 '새만금 생명의 소리'행사를 벌이며 큰 북을 울린다. 생명을 살리고 희망을 키우는 일에 모두 나서자는 북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한천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