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더 받게 해달라는 변호사 … 서울고법, 감치하고 과태료 물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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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고등법원 재판장이 재판을 연 지 두 번 만에 “재판을 더 받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변호사를 감치(監置)한 뒤 과태료를 물린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당한 권한 행사냐, 무리한 변론권 제동이냐를 놓고서다. 특히 변호사 감치는 지난 4월 울산지법에서 법정 소란을 일으킨 변호사에 이어 올 들어 두 번째다.

 24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부(부장 정종관)는 지난달 12일 아파트 분양 관련 손해배상 소송 사건 항소심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원고 측 유모(44) 변호사는 “1심에서 원고의 주장에 대해 피고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는데도 패소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재판장은 “피고가 답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한 달여 뒤로 기일을 잡았다. 이날 재판은 10여분 만에 끝났다. 지난 19일의 2차 변론기일에선 하루 전 유 변호사가 제출한 사실조회 서류가 쟁점이 됐다. 서류를 훑던 재판장은 “더 할 것 없느냐”고 묻고는 “변론을 종결하고 9월 6일에 선고하겠다”고 했다. 유 변호사는 “피고로부터 사실조회 서류에 대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며 “재판을 한 번 더 받고 싶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장은 “이미 종결했다”며 퇴정 명령을 내렸다. 유 변호사가 “퇴정할 수 없다”고 버티자 재판장은 “감치하겠다”고 경고했다. 유 변호사가 “왜 증거로 받아주지 않느냐”고 따지자 재판장은 “실기한 공격(너무 늦게 제출했다는 취지)”이라고 설명했다. 5분 동안 휴정한 뒤에도 유 변호사가 퇴정하지 않자 재판부는 유 변호사를 구치감에 유치했다. 40분 뒤 감치재판을 받은 유 변호사는 과태료 30만원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유 변호사는 23일 이에 불복해 항고장을 제출했다.

 유 변호사는 “변호사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감치한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해당 재판부는 “1심을 거치며 충분히 재판했으니 재판을 더 받고 싶다면 법정에서 버틸 게 아니라 상고를 하든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는 게 맞다”며 “두 번이나 퇴정을 명령했는데 불응해 정당한 재판지휘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한변협은 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로 했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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