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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두산맥 연고전, 젊음의 포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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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연고전이 다시 열렸다. 40여년의 전통을 이어온 이 명문의 대결은 상아탑속에서 곱게 다듬어진 젊은이들의 정열이 공동의 대화를 마련하는 지성의 광장으로서, 빼어놓을 수 없는 거족적인 행사의 하나가 됐다. 일제의 탄압이 극심했을 때 양교의 대결은 억눌린 민족감정이 폭발할 수 있는 유일한 분화구였으나 이제는 승부를 초월할 수 있는 숭고한 이념만이 지상의 목표로 되고 있다.
양대사학의 역사는 80년을 헤아린다.
1885년 제중원의 창설을 모체로한「세브란스」의전과 1915년 경신학교 대학부란 명칭으로 문을 연 연희전문학교가 1957년 합쳐져 지금의 연세대학교를 이루었고 고대는 보성전문으로 1905년 창설되었다가 해방 이득해 지금의 고려대학교로 개명되었다

<「팬」들이 붙인 이름「연고전」>
개화기의 이나라 인재와 함께 무수한 체육인을 길러낸 연고전의 역사는 그대로 한국체육50년사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1930년대, 이땅의 모든「스포츠」행사가 모두 연보전의 대결로 압축되어지자 일반의 관심은 연보전에 집중되고『연고전』이란 명칭도 양교에서부터 불리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일반「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축구·농구·야구·「럭비」·「아이스·하키」등 5종목 종합대결로 펼쳐지는 지금의 연고전은 60년대의 개념이고 당초의 연보전은 축구와 농구였다.
1926년11월 배재고 운동장에서 벌어진 제7회 전조선 축구대회 전문부 준준결승전에서 연전과 보전의 대결이 연대상으로 연고전의 시초였다.
1930년9월 YMCA가 주최한 전문학교 농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연전과 보전이 대결한 다음부터 연보전의 「이미지」가 지워버릴 수 없는 영상으로 부각되었다.

<스포츠 활동의 총집약으로>
30년대의 연보전은 단순한 양교의 「스포츠」행사로 그친 것이 아니라 이나라「스포츠」활동을 총집약한 것이었다. 운동경기가 열렸다하면 결승은 으레 연전과 보전이 맞붙었다.
45년 해방이되면서 양교졸업생들이 연고축구전을 주최했고 46년 양교가 축구경기를 정기전으로 열도록 합의했다.
따라서 연고정기전은 46년부터 축구만으로 부활되었으며 56년 경기종목을 늘려 종합친선경기를 갖기로 결정, 지금처럼 5종목경기를 갖게 되었다.
연고전하면 화려한 양교의 응원을 빼놓을 수 없다. 신촌의 독수리나 안암골 호랑이는 이때부터 부각되기 시작한 양교 응원단의「심벌」이다.
고대의 농악과 연대의「브라스·밴드」는 40년전의 모습과 지금이 조금도 다름없는 모습이다.
경기가 끝나면 양교응원단은「스크럼」을짜고 시가행진을 벌였다. 그리고 모여드는곳은 안암동 형제추탕집과 무교동의명월관. 응원단끼리의충돌도 적지않았다.
32년 축구경기도중 양교응원단이 편싸움을벌여 부상자가 생기고 경기가 중단되자 양교는 그후3년동안 경기를 갖지않기로 합의했었으나 33년 양교졸업반 선수들끼리 친선경기를 가졌던 것이 말썽이되어 당시 일경은 연보전의 경기를 일체 중지시켰다.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된후라 일반인들의 상해왕래가 금지되어있던 시절이었는데 이들 연보전 선수들이 상해원정을 계획했었기 때문이었다.

<전일본대회서 눈물의결승>
양교의 농구가 한장1승1패로 우열을 다투기 힘들었던 38년1월 연전과 보전이 전일본 농구선수권대회에 출전했을때의 결승전은 눈물겨운 장관을 이루었다. 이땅도 아닌 남의땅, 양「팀」이 맞선 결승전이 열리던 동경국민체육관은 한때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한국인끼리 결승전이 벌어진 일본선수권대회에 일본관중은 한사람도 없었고 모두 우리 동경유학생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일본땅의 한국인들. 언어를 빼앗겼던 이들에게, 굳게 닫힌 입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고 단하루였다. 어느 한편을 응원하는 것도 아니면서 오랫동안 막혔던 우리말이 경기장을 떠나갈 듯이 만들었고 급기야 경기가 끝난 다음에는 이긴 보전이나 진 연전이나 유학생들이 모두 한데 어울려 닫혔던 감정을 눈물로 폭발시킨 것이다.

<명문대결에 의의 더깊어>
금년 연고전은 대학가의 휴교와 전국체육대회의 연기등으로 까딱했으면 유산될뻔했다. 연고전은 가을철이면 벌어지지않을 수 없는 체육풍토, 그만큼 연 고전은 큰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민의 여망이 큰 까닭이다.
40년전통을 지닌 연고전은 미국의「하버드」대와 「예일」대학의 미식축구나 영국의「옥스퍼드」대와「케임브리지」대가 벌이는「보트·레이스」,일본의 조도전대와 경응대의 야구가 그나라 국민들사이에 차지한 관심과 비중에 비하면 훨씬짧은 연륜이다.
축구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축구보다는「케임브리지」대「옥스퍼드」의「보트·레이스」가 거국적인 행사의하나로 되고 있음은 경기 자체가 명문끼리 맞선다는 점에 있고보면 한국의 연고전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칠만한 날이 멀지 않을 것 같다.

<글 이양 기자><사진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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