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조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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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기가 없는 우리집에 인천에사는 동생의 딸 경민이를 데려왔다. 이모를 엄마처럼 따르는 네 살짜리 꼬마로는 꽤 영리한 편으로 어딜가나 나의 동행인이다. 산이며 숲 밭으로 둘러싸인 우리 집 뒤 파밭에서 흙을 파헤치며 파뿌리를 들어내는 닭을 쫓으려는데 저만큼 보이는 흰종이 한장이 내눈에 띄었다. 얼른 주워봤더니 미국이나 한국정세를 비난하고 개헌이며 예비군에 대해서 욕설을 퍼부은 북괴 「비라」였다.
신고를 하려고 경민이를 데리고 지서 앞까지 갔다. 관공서나 지서출입이 드문나는 서먹해져 꼬마를 들여보냈다. 경민이는 착하다고 하더라면서 돈 10원을 얻어왔다. 『이모 그 종이뭐야』고 묻기에 나쁜 놈들이 우리들을 죽인다고 써놓은 것인데 우리가 알려주었으니까 순경아저씨가 모두 막아줄 거라고 일러주면서 얻어온 10원으로 풍선을 사줬다.
며칠 후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경민이가 보이질 않았다. 이리저리 찾아다니다가 지서 앞에서 「아루스연고」설명문이 쓰인 종이를 손에든 경민이를 만났다. 내가 어릴 때에비해서 용감한 경민이가 한층 대견스러웠다.<강진영·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 5∼10김종수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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