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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갑맞은 창경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창경원은 오는 11월1일로 개원한지 만60년, 회갑을 맞는다. 그간 여러차례 수난을 겪고 오늘의 모습으로 자라난 창경원은 6백년의 유서를 안조 두번이나 불타는등 숱한 애환을 겪었고 비화를 지녀왔다. 역대 창경원을 지켜본 산 증인들이 어제를 돌아보며 숨은 얘기와 그때의 고충을 회갑잔치를 맞아 털어놓았다.

<두번이나 불타고>
원래 창경원은 태존18년(1418년)에 폐허가된 고려의별궁터에 수강궁을 짓고 성종14년(1483년)에 창경궁으로 창건, 두번이나 불탄뒤 순조33년(1838년)에 현재있는 대부분의 건물을 세웠다. 1907년 고종폐위후 일본통감부는 순종을 창덕궁으로 옮기고 왕을 위로한다는 구실로 동·식물원을 짓고 이름을 창경원이라했다. 순종은 두해가 지난 1909년 『모든 백성에게 공개하여 구경하게하라』는 명을 내려 일반에게 개방됐던것.
그때 창경원은 목조건물7동에 곰과 코끼리 한마리씩뿐이었던 것이 60년이지난 지금은 5만6천평의 대지위에 1백44동7백45마리의 동물과 4백34종 1만9천6백13수의 식물을 갖추게 되었다. (10월29일현재)

<민족수난과 함께>
또 창경원반세기는 우리민족수난의 역사와도 같다. 2차대전말기 6·25동란때는 전쟁과함께 많은 동·식물이 무참히 죽어 다시 폐허가되기도 했다. 따라서 지금 창경원의 동·식물은 모두 6·25이후에 들여온것.
1952년12월4일 미군병사 「제임즈·구틴」이 「필리핀」산 원숭이 한쌍을 기증했는데 이것인 창경원가족의 최고참으로 나이가 지금은 20살이다. 이당시를 오창영현동물원장은 『빈우리마다 닭이나 칠면조·꿩들을 닥치는대로 채워넣었다』면서 「칠면조 동물원」이라고 비유했다. 이듬해 53년5월 어느날 고 이대통령이 창경원으로나와 텅빈 우리를 돌아보고는 『일본사람이 고궁을 헐고 동물원을 지은것은 우리민족을 멸시하려고한것』이라고 노하면서 『동물원을 딴곳으로 옮기라』고 당시 구왕실재산 관리총국장 윤우경씨 (69·영등포구대방동198)에게 명령했다.

<이박사는 없애라고>
이때 윤씨가 『시민들이 전쟁통에 집을 잃고 토굴에서 살고있는데 동물원을 옮기는데 거액의 국고를 쓰면 비난이 있을것』이라고 건의, 간신히 오늘의 창경원의 자리를 지키게했다고 그때를 되새겼다. 『창경원이 제대로 체모를 갖추기는 54년 동·식물 재건위원회가 발족하여 성금으로 모은 4만2천 「달러」로 「네덜란드」 태국등지서 코끼리·하마·낙타등을 사들인 뒤부터』라고 윤우경씨는 말했다. 56년부터5년간 창경원장직을 지낸 박응구씨 (54·용산구한남동68)는 『그땐 예산이 없어 원내 청소작업마저 마포형무소 죄수를 동원해야했으며 제주도에서 꿩알을 사모아 이를 부화해서 키운뒤 오국에 팔아 그돈으로 동물 몇마리씩을 사들였다』고 그때의 고충을 회상했다.

<꽃사슴 뿔잘리고>
44년동안 창경원과함께 늙어온 동물사육가 박영달씨(63)는 2차대전말 호랑이·사자등 맹수류50여마리를 일본궁내성의 명령으로 독살하던날 저녁 『마치 자식을 읽은듯한 허전한 기분으로 막걸리집에 하염없이 앉아있었다』고했다. 박씨는 또 가장 가슴아팠던 일로 『해방직후 사료난으로 낙타가 판자를 뜯어먹고 버티다 죽었는데 해부를 해보니 위속에서 쇠못이 3근이나 나왔던일』이라고 말했다.
창경원반세기는 많은 「에피소드」로 얽혀있다. 윤우경씨 박응구씨가 대만서 장총통한데 얻어온 꽃사슴이 61년9월20일 목잘리 사건 (세칭 녹두사건), 66년봄 23살난 노망한 「벵골」산호랑이의 안락사, 비단구렁이가 종적을 감춘일등 숱한사건이 창경원의 나이테에 얽혀있다. 창경원을 지켜보는 이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춘당지의 「보트」놀이를 금해달라는것.
보트놀이 금지를
이연못에는 순종이 독일에서 사와 기르던 금잉어가 무수히 많아 관람객이 빵조각을 던지면 떼지어 몰려와 정취를 돋우었다는것. 지금은 「보트」놀이로 번식이 중단되데다 고궁의 풍치를 망치고있다고 입모아 나무랐다.
창경원 김기석소장은 오는 11월1일 회갑을 맞아 총공사비 2억여원을 들인 지하 1층 지상2층 (건평1천4백평)의 동물사와 「돔」식 큰온실 식물원 2동을 지어 창경원을 더욱 시민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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