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국서 망국까지 만화로 … 조선 이해하는 내비게이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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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자신이 그린 조선왕 27명을 배경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설명 중인 박시백 화백. “만화적 재미보다 정사 묘사에 주력했다”고 했다. [사진 휴머니스트]

만화 컷으로만 2만5000컷, 장으로 따지면 4000장이다. 2003년 7월 ‘개국’편으로 시작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휴머니스트)이 20권 ‘망국’편을 끝으로 드디어 완간됐다.

 2077권에 달하는 ‘조선왕조실록’(실록)을 만화로 옮겨보겠다는 야심찬 기획이었다. 준비과정까지 총 13년이 걸렸으니, 박시백(49) 화백은 자신의 40대를 오롯이 이 ‘실록’에 바친 셈이다. 그동안 500여 명의 역사적 인물이 만화 캐릭터로 생생하게 되살아났고, 70만 명의 독자가 그의 대장정을 함께했다.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박 화백은 “시원하단 마음과 섭섭함 비율이 9대 1쯤 된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의 등 뒤에는 태조부터 순종까지 27명의 왕들이 일렬로 서 있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완간을 기념해 특별히 제작한 것이다. 야심 가득한 세조부터 잘생긴 헌종, 풍채 좋은 세종까지 박 화백의 애정어린 손길이 전해졌다.

“왕의 초상화가 전쟁 때 대부분 소실돼, 기록이 없는 경우 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이미지화 했습니다. 연산군은 성숙하지 못한 10대 비행 소년 느낌이라 얼굴에 반창고를 붙였죠.”

 박 화백은 자료 수집부터 콘티, 스케치, 채색까지 문하생의 도움없이 혼자서 작업했다. 실록을 공부해서 정리한 노트만 121권에 달한다. 책은 ‘야사’보다 ‘정사’에 집중했다. “전반부에는 만화적 재미를 많이 추구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재미가 떨어지더라도 실록 자체를 제대로 전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TV 사극뿐만 아니라 유명한 역사서마저도 실록과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는 이번 책이 ‘실록’으로 들어가는 내비게이션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실록’의 기록 및 보관 형태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왕과 신하들이 주요 정책을 결정했던 상황을 대부분 기록으로 남겨놓았고, 왕이 볼 수 없게 차단했습니다. 전국 여러 곳에 설치한 사고에서 보관했기 때문에 전쟁 통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죠.” 최근 ‘NLL 대화록’ 기록 논란과 관련해 그는 “실록의 기록 및 보존의 정신을 되새겨볼 때”라고 했다.

 1997년부터 5년 간 한겨레신문에서 만평을 그리던 박 화백은 사극 ‘왕과비’(KBS)를 보다가 조선사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 고된 길로 들어섰다. ‘만화가’다운 이름 ‘시백’은 언뜻 필명 같지만 본명이다. 신문사에 다닐 때 ‘시사만평화백’의 줄임말 아니냐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대장정의 긴긴 이야기는 29일부터 박 화백이 직접 출연하는 팟캐스트로도 들을 수 있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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