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제2의 관치 논란 자초한 KB금융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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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KB금융이 지난 주말 단행한 계열사 임원 인사를 놓고 ‘제2의 관치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중심엔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있다. 이 행장은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와 같은 금융연구원 출신이다. 은행에서 일한 지 2년이 채 안 됐다. 애초 유력 후보군에 거론되지 않다가 막판에 급부상했다. 내정 전부터 노조는 이 행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관치·외압설을 제기했다. 이 행장의 실력·자격 여부를 떠나 금융계에 ‘관치 논란’이 크게 불거진 미묘한 시점에 굳이 이런 인사를 단행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임영록 KB금융 회장 자신도 “내부 인사를 중용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KB금융 측은 “관치·외압설은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지만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KB생명·자산운용·카드 등 전문성이 꼭 필요한 부분에 관련 경력 2년 안팎의 비전문가들을 줄줄이 선임하고 금융지주 부사장에 한나라당 부대변인 출신을 앉히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인선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금융계에선 ‘관치 망령이 정실인사를 불렀다’며 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낸 임 회장 본인이 관치의 수혜자라 외압을 뿌리치지 못한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겠나.

 KB뿐 아니라 한국 금융은 이미 과거 정권에서 관치와 낙하산의 폐해를 톡톡히 겪었다. 노조 반발을 달래기 위해 임금을 올려주거나 구조조정 포기 약속을 하기 일쑤였다. 그 결과가 어땠나. 최근 3년 새 주요 시중은행 지점은 300여 개 늘었고, 연봉은 7600만원으로 30% 넘게 올랐다. 반면 18개 국내 은행의 올 1분기 당기순이익은 1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은행 수익이 줄어도 임금과 지점 수는 늘어나는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국민은행의 성적표는 더 나쁘다. 1인당 생산성이 4대 금융지주 계열 중 꼴찌다. 지난해 신한은행이 1인당 1억1540억원의 순익을 낼 때 국민은행은 6700만원에 그쳤다. 정부 소유인 우리은행의 9630만원에도 못 미쳤다. 당장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시급한 KB금융이 또 관치 논란에 휩싸여서야 어디 노조에 양보와 희생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