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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기, 아이폰, 정장 세 벌 빼고 다 팔았다…"위기에 빠진 서구 민주주의 구출하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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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집 없는 억만장자’ 니콜라스 베르그루엔(51). 재산 20억 달러로 세계 최고 갑부 대열의 투자자이지만, 대부분의 소유물을 처분하고 2000년부터 ‘고급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한때 좌파 이념에 심취했던 그는 지금 서양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다. 1억 달러를 투입한 그의 싱크탱크에선 어떤 대안을 구상 중일까. 본지 해외 대학생 객원기자인 이승윤(옥스퍼드대 학생자치기구 ‘옥스퍼드 유니언’ 전 회장)씨가 그를 만났다.

51세의 억만장자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은 집 없이 전용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빈다. 자택을 비롯한 대부분의 소유물을 2000년 모두 매각했다. 미혼인 그는 훗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예정이다. 사진은 그가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자신의 초상화를 위해 자세를 잡고 있는 모습. [사진 블룸버그]

약속 시간인 일요일 오후 2시보다 약간 일찍 런던의 5성급 호텔 클래리지에 도착했다. ‘버킹엄 궁전 별관’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을 정도로 화려한 호텔이다. 호텔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나도 모르게 왠지 움츠러드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촌구석 옥스퍼드’에서 올라 온 책가방 멘 학생이란 나의 신분 때문일까? 패션쇼 런웨이에서나 볼 수 있는 옷을 차려 입은 신사·숙녀들에게 둘러싸일 때 나오는 당연한 감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를 만난 것은 지난 6월 23일이다. 점심을 함께하며 인터뷰했다. 예약된 식당으로 가서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이라고 이름을 대니 친절한 호텔리어가 아직 손님이 안 오셨지만 테이블로 안내해 드릴 수 있다고 했다. 세계적인 억만장자의 테이블인 만큼 호텔 식당 구석의 가장 사적인 공간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싱크탱크 멤버. 왼쪽부터 슈뢰더 전 독일 총리, 카르도주 전 브라질 대통령, 곤살레스 전 스페인 총리, 네이선 가델스 ‘글로벌 뷰포인트’ 편집장, 베르그루엔.

 ‘집 없는 억만장자’(Homeless Billionaire). 세계 언론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그의 직업은 투자자다. 자신의 투자회사인 베르그루엔 홀딩스를 통해 버거킹, 독일 유명 백화점 기업 칼슈타트와 엘파이스, 르몽드를 자회사로 소유한 스페인 미디어 그룹 라 프리사 등이 그의 재산목록에서 비교적 널리 알려진 것들이다.

 오스카 시상식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호화로운 파티를 개최하는 플레이보이로 유명했던 그가 2000년 뉴욕과 플로리다의 자기 집과 소장하고 있는 그림을 포함해 모든 소유물을 매각해 화제가 됐다. 전용 비행기와 통신수단인 아이폰, 그리고 정장 두세 벌만 빼고. 그날 이후 이 51세의 미혼 남성은 자신의 전용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면서 클래리지와 같은 최고급 호텔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학생자치기구인 ‘옥스퍼드 유니언’에 지난해 11월 연사로 왔던 그를 맞이한 지 반년 만의 만남이다. 내가 “여름 방학에 서울에서 시간을 보내고 어쩌면 캘리포니아에 잠깐 갈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니콜라스도 여름에 캘리포니아에 있을 것이라며 특유의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마침 이번 여름 캘리포니아에서 한국인 철학자인 텍사스 오스틴대 승계호 석좌교수님에게 철학 지도를 받으려고 해요.” 저명한 할리우드 배우에서부터 84세의 재미 한국인 철학자 승계호까지, 니콜라스의 인맥은 신기할 수밖에 없다.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 모두에 능통해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도 캘리포니아에 오게 되면 같이 봐도 좋겠네요.”

니콜라스의 반짝이는 눈에서 소년 같은 모험심과 지적 호기심이 느껴졌다. 게다가 20대 후반이라고 해도 믿길 만한 소년 같은 외모를 지니고 있다. 이런 니콜라스의 분위기는 뉴욕의 월스트리트나 런던 카나리 울프의 금융 엘리트들에게서 상상되는 치밀하게 포장된 매너리즘과 현란한 말솜씨와는 상당히 대비되는 것이다. 그의 소년스러움은 상대방의 방어심리를 무장해제시킨다.

베르그루엔(왼쪽)과 이승윤 대학생 객원기자.

 “쉴 새 없이 사람만 만나다 갑니다.” 그의 3일간 미팅 일정에는 고든 브라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같은 국가 정상부터 ‘제3의 길’로 유명한 앤서니 기든스 같은 영국의 오피니언 리더가 빼곡히 적혀 있다. 우선 그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경험부터 물어봤다.

“정말 특별할 것 없는 어린 시절이었어요. 저는 시골이랑 파리에서 거의 모든 유아기와 청년기를 보냈어요. 주위에 친구도 별로 없어서 혼자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죠.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었죠. 상당히 외로웠습니다. 하지만 혼자 책 읽고 사색할 시간이 많았어요. 특히 정부와 국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심을 갖게 됐죠. 청소년 시절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의 헌법을 써보기 시작했어요. 여러 개의 헌법을 썼는데 너무 순진한 것들도 많았죠. 어렸을 때는 반기업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사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청소년기까지는 그렇게 정치, 역사, 철학을 익히는 데 시간을 쏟은 것 같아요.”

 스스로 특별한 건 없다고 말하지만 니콜라스는 청소년기에 마르크스, 레닌 같은 공산주의자와 사르트르, 카뮈 같은 실존주의자의 글을 읽으며 좌파 사상에 심취했다. ‘제국주의 언어인 영어를 못 배우겠다’는 다짐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금융과 비즈니스의 길에 들어간 것이 궁금했다.

 “10대 후반이 되면서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실제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의 실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비즈니스에서 배운 경험과 지식을 세상을 바꾸는 데 쓰자고 결심했죠.”

 잘나가는 미술상이었던 독일계 유대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컸던 그가 좌파 사상에 빠진 이유도 궁금했다. “모든 개인들이 인간으로서 존중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균등한 기회가 열려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죠. 제가 편하게 사는 이유는 부모를 잘 만나 운이 좋았다는 것밖에 없었거든요. 이것이 별로 정당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고 고치고 싶었죠.”

지난해 11월 열린 옥스퍼드 유니언 토론회. 왼쪽부터 네이선 가델스 ‘글로벌 뷰포인트’ 편집장, 앤서니 기든스 런던정치경제대 명예교수, 베르그루엔, 이승윤 대학생 객원기자.

 돈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 벌게 됐나 묻자 그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벌었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버지 도움을 받았느냐고 다시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요. 전혀 안 받았습니다. 친한 친구한테 2000달러(약 200만원)를 빌려서 시작했죠.”

 2000달러 가지고 20억 달러를 넘게 만들었다는 대답에 몹시 놀라는 표정을 짓자 “금액이야 어찌됐든 돈을 많이 모으게 됐죠”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말투로 조금 더 설명을 덧붙였다. “주식시장에 우선 돈을 투자하고 기업들에 투자하기 시작했죠. 기업 투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본적인 현금 흐름을 관리하는 것이죠. 특별히 마법처럼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답변은 간략하면서 명료했다. 내친김에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들을 계속해서 던졌다.

 - 그렇게 많이 벌어서 사 모은 소유물을 모두 다 팔았는데, 그런 결정을 한 계기가 있었나?

“저에게 노마드(유목민) 같은 삶은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저는 물질에 그렇게 애착을 갖지 않아요. 처음 물질을 소유하게 됐을 땐 흥미를 가졌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를 방해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질은 끊임없는 관심을 요구하죠. 우리 모두에게는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고, 좀 더 의미 있는 곳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지극히 실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 어차피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을 거라면 왜 돈을 벌려고 했죠?

“아까 말한 대로 나는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세상을 더 현실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돈은 큰 자유와 편의를 주죠. 하지만 자유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기회도 얻지만 동시에 많은 책임이 뒤따르죠.”(이 대목에서 니콜라스는 돈에 대해서 상당히 쿨한 생각을 펼쳐 보였다. 어차피 가족도 부인도 없고 가장도 아니니 돈을 물려줄 데도 없고,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 세계를 떠돌며 집도 부인도 가족도 없이 사는 게 외롭지 않나요?

“저도 제가 외로움을 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흥미로운 프로젝트와 아이디어들이 있으면 외로울 겨를이 없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많은 직책과 프로젝트를 갖고 있어서 외로울 시간조차 없습니다.”

 - 지금 당신의 소유라고 할만한 것은 ?

“종이백에 넣을 정도밖에 없습니다. 이런 질문들이 항상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정말 저에게 이 같은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문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집 없는 억만장자’라는 별명이 오히려 저를 방해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가 하는 중요한 일들이 많은데 이런 사적인 것에만 언론의 관심을 받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냥 집을 살까도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집이 없느냐는 질문은 더 이상 안 하겠죠.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저의 라이프스타일은 단순히 실용적인 선택에 불과합니다.”

그는 사적인 얘기를 더 하길 원치 않았다. 그의 비움 뒤의 삶의 행보에 관심을 가져주길 원했다. 그는 야심 찬 꿈을 꾸기 시작했다. 서양 자유민주주의를 절체절명의 위기로부터 구출하는 것이다. 패리스 힐턴,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같은 명사들이 참석하던 자신의 할리우드 파티도 올해부터 더 이상 주최하지 않기로 했다. 투자 활동도 이제는 부업이라고 한다. 도대체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4년 전부터 니콜라스는 자기가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정치와 철학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과외도 받는다. 특히 동양 철학과 동양의 정치 시스템에 새로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주 활동 무대도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옮겼다. “당신이 아까 집 없이 돌아다녀서 외로우냐고 물어봤는데, 캘리포니아에서는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조금 외로움을 탔죠. 하지만 고독은 창의적인 사고를 가능케 합니다.”

 캘리포니아에서 공부하며 느낀 문제가 바로 서양의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억 달러를 투자해 ‘니콜라스 베르그루엔 거버넌스 연구소’라는 싱크탱크를 설립했다.

좋은 곳에 기부하는 부자들은 상당히 많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된다. 그의 자선 활동은 그런 갑부의 기부와 성격이 다르다. 그는 이 시대의 문제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근본에서부터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을 고치고 싶어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문제는 무엇일까?

 “서양의 자유 민주주의는 현재 ‘다이어트 콜라 민주주의’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다이어트 콜라가 무엇인가요, 콜라를 마시고 싶은데 살은 찌기 싫어하는 것이죠. 이런 성향이 투표나 정치 행위에도 나타납니다. 세금 없이 복지를 얻으려고 하고, 장기적인 안목 없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임시방편으로 내놓죠. 현대 소비 만능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소비자들은 끊임없는 소비를 통해 단기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데, 이런 경향이 정치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국가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절차적 민주주의가 특정 이익집단과 그들의 로비스트에 의해 남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 대다수를 위해 절실히 필요한 제도나 법안을 월스트리트의 금융 엘리트나 미 총기협회 같은 이익집단들이 끊임없이 비토(Veto: 거부권)한다는 것인데, 비토크라시(Vetocracy)라는 말은 그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대표 격인 미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니콜라스의 진단이다. 재정절벽이나 시퀘스터와 같이 중대한 문제를 눈앞에 두고 정쟁만 일삼는 두 정당의 무능함. 그리고 지난해 말 코네티컷 주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로 26명이 사망한 뒤에도 총기 규제 법안을 막은 미국 총기협회의 강력함. 그래서 니콜라스는 장기적인 안목을 상실하고 소수의 이익집단들에 지배당하는 서양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자신의 문제 의식과 해결책을 제시한 책을 작년에 출간했다. 책 이름이 참 재미있다. 『21세기를 위한 지성적 거버넌스: 서양과 동양 사이의 중도의 길』이다. 옥스퍼드 유니언에서 전 세계 최초의 출판 기념 강연을 했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책을 2012년에 읽어야 할 10권의 책 중 하나로 선정했다. 어렸을 때 자신이 생각하는 유토피아적 헌법을 쓰던 훈련이 열매를 맺은 것일까? 아무튼 그는 서양은 동양에서, 동양은 서양에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양 정치의 큰 장점은 국민 모두가 민주적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국가 권력을 항상 견제할 수 있고 정부가 투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도 소비 만능주의에 찌들어 유권자들이 단기적인 욕구 충족에 급급합니다. 장기적인 구조개혁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반면 중국·싱가포르 같은 동양 정치 시스템은 수천년 동안 지속되어온 실력 우선주의의 유교적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경쟁과 시험을 이겨 낸 능력 있는 관리들이 나라를 이끌죠. 예를 들어 유권자들의 단기적인 압박에 시달리지 않는 중국 관료들은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워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국가를 통치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정부 조직이 투명하지 못하고 부패에 시달릴 수밖에 없죠. 저는 이 두 극단에서 중도의 길을 찾습니다.”

니콜라스는 책을 쓰고 싱크탱크에서 토론을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제 연구소는 싱크탱크(thinktank)일 뿐만 아니라 액션탱크(actiontank)이기도 합니다. 저희의 아이디어를 직접 세상에 적용해보자고 생각했죠. 제가 철학과 정치를 공부했던 캘리포니아의 문제부터 풀어보자고 생각했죠.”

그가 지상낙원으로 생각하는 캘리포니아야말로 미국 정치구조의 강점과 약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라고 했다. “실리콘밸리나 할리우드에서 볼 수 있듯이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창조적 문화를 대표하는 곳입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그리고 세계 최고의 상업 영화들이 모두 여기서 나오죠. 하지만 팰로앨토의 동쪽으로 가보세요. 정말 가난한 사람과 노숙자들 천지죠. 캘리포니아의 주정부는 황당하게도 지금 교육 예산보다 감옥을 짓고 관리하는 데 돈을 더 들이고 있지요.”

캘리포니아 정부는 실제로 2011년 주 정부의 예산 중 11%를 감옥에 썼고, 7.5%를 교육에 썼다. 캘리포니아의 실업률은 10%를 넘는다. 미국 주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파산 위기에 놓인 주 정부의 재정 상태는 그리스와 그리 다르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수십조 달러의 적자에 시달리는 캘리포니아의 재정난이 그리스 같은 재정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니콜라스는 캘리포니아 재정 파탄의 원인은 캘리포니아 특유의 ‘직접 민주주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캘리포니아는 1911년부터 세 가지 직접 민주주의 법률을 도입했다. 유권자가 직접 법률을 제정하는 ‘주민발의권’과 입법부가 발의한 법률을 지지 또는 반대할 수 있는 ‘주민투표권’, 그리고 어떤 선출직 관리도 탄핵할 수 있는 ‘소환권’ 등이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1980년부터 수백 개의 법안을 발의해왔다.

 “캘리포니아는 직접 민주주의가 상당히 강한 주입니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수많은 법안들을 매년 발의해왔죠. 하지만 이 주민 발의는 광고 비용 때문에 엄청난 돈이 듭니다. 돈이 많은 특정 이익집단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주민들은 법안에 대한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투표를 합니다. 대중들은 본성적으로 세금은 깎고, 복지는 늘리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

이런 캘리포니아의 정치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 그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캘리포니아를 생각하는 위원회(Think Long for California)’를 만들었다. “재계와 노동계, 공화당과 민주당에서 영향력 있고 촉망 받는 인사를 골고루 뽑아 모았습니다”라며 그는 위원회의 초당적인 성격과 탈이념적인 성격을 강조했다. 멤버들은 정말 화려하다. 공화당 출신 콘돌리자 라이스와 민주당 출신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공화당 출신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구글의 에릭 슈밋, 야후와 워너 브러더스의 전 사장인 테리 세델과 노조 지도자들을 모았다.

이것은 아마 실력 있는 엘리트를 통해 통치하는 싱가포르와 중국의 시스템에서 받은 영향일 것이다. 그는 이 화려한 멤버들과 장시간의 회의·토론을 거쳐 2011년 11월 캘리포니아 주 개혁안을 내놓았다.

 니콜라스의 개혁은 캘리포니아에서 그치지 않는다. ‘유럽의 미래를 생각하는 위원회(The Council for the Future of Europe)’를 만들어 유럽연합(EU)과 유럽의 개혁에도 앞장서고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슈뢰더 전 독일 총리, 곤살레스 전 스페인 총리, 마리오 몬티 전 이탈리아 총리 등 전직 유럽 국가지도자들과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 마이클 스펜스 교수, 니얼 퍼거슨 교수, 앤서니 기든스 교수와 같은 당대 최고 지식인을 모아 쓰러져가는 EU를 살리기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국에 대해 물었다.

“저는 서양과 아시아의 많은 국가가 한국에서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가를 초기에는 권위주의 정권이 체계적인 계획으로 경제를 살렸죠. 그리고 경제가 어느 정도 정착되자 아주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뿌리내렸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정착시킨 것은 정말 대단합니다.”

 니콜라스는 한국이 유럽과 미국을 무조건 따라가는 것을 경계했다. 미국과 유럽의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에서도 배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동양적 미덕인 조화와 장기적인 안목을 간직하고, 한국만의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정치 시스템 사이에서 중도의 길을 추구하는 그다운 조언이었다. 그가 12월 2~7일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는데, 거의 20년 만의 방한이 될 듯하다.

런던=이승윤 대학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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