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명백 … 사법처리 여부에 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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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북송금 사건을 놓고 김대중 대통령이 14일 실정법 위반 사실을 시인하면서 법적 책임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金대통령, 그리고 청와대와 국정원 관계자들의 위법행위는 명백해졌지만 과연 처벌로 이어가야 하느냐 마느냐의 논란이다. 통틀어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보아 한 묶음으로 넘어갈 것이냐, 아니면 누군가 위법행위의 책임을 질 것이냐다.

◇변협.민변도 엇갈린 시각=대한변협은 성명을 통해 "실정법 위반 행위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국가의 대외신용도 회복을 위해 성역없는 수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가정보원이 비밀리에 현대 측의 송금 편의를 제공한 것이 국익을 위한 행위인지 의문"이라며 "환전 편의 제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남북 정상회담 개최 관련 여부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사를 통해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을 요구한 셈이다.

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정치적 해결 쪽에 무게를 실었다. 논평을 내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대북송금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대북정책을 국민적 공감대의 기초 위에 실행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일단 평가했다.

먼저 국회 등 정치권에서 진상규명 작업을 벌인 뒤 미진하다고 판단될 경우 특검제 도입 등 규명절차가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위법은 분명"=金대통령은 송금 사실을 보고받고 남북관계 등을 고려해 이를 묵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한변협 하창우(河昌佑)공보이사는 "대통령이 사후 보고를 받았다고 했지만 상식상 대통령이 직접 추진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대통령도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스스로 남북교류협력법 등을 위반한 처벌 당사자라는 주장이다.

대통령이 직접 관여하지 않고 묵인만 했다 하더라도 직권 남용의 문제는 남는다. 황도수(黃道洙)변호사는 "대통령이 실정법 위반을 알고도 묵인했다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또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은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국정원이 현대의 대북 송금 과정에 편의를 제공했다"고 했다. 편의 제공에는 우선 산업은행 수표 허명 배서 등 소위 '돈 세탁'관련 부분이 있다. 금융실명제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국정원은 또 해외계좌로 이 돈을 부치면서 은행에 허위 계약서류를 제출했을 것으로도 추정된다. 외국환거래법 위반이다. 만약 대북사업이 아닌 정상회담의 대가였다면 국가보안법 위반(편의 제공) 혐의도 추가된다.

◇법적 책임 논란=사건의 핵심은 대통령의 면책범위다. 송금 행위가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통일을 위한 재량'범위 안에 있다고 볼 경우 면책대상이 될 수 있다. 그 경우 국정원 관계자들도 한 묶음으로 간주해 처벌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면책되느냐 아니냐에 관계없이 송금 과정에서 국정원이나 금감원 등의 위법행위는 처벌대상이 돼야 한다는 논리도 제기된다. 전례없는 초유의 사태인 만큼 모델케이스는 없다.

그러나 결국 누군가는 범법의 책임을 지고 희생양이 돼야한다는 것이다. 사건의 진행을 주도한 국정원 쪽이 될 수도, 그에 협조한 금감원 쪽이 될 수도 있다. 향후 사건 실체 규명을 어떤 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문제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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