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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김영란 부패방지법' 관철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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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

2011년 6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은 ‘부정 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초안을 국무회의에 소개했다. 다수의 국무위원이 이 초안에 반대 의사를 보였다. 김 위원장은 굽히지 않고 “공청회나 국민토론회 등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14개월 뒤인 2012년 8월 처음보다 더 잘 정리된 법안이 입법예고됐다. 이 안은 10개월 뒤 새 정부에서 정홍원 총리의 조정안으로 나왔다. 조정안에선 공직자의 대가성 없는 후원금·스폰서·촌지 등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와 친척·친지 간의 금전 수수는 어떻게 하느냐 등이 이견의 초점이다.

 한국의 뇌물 문화는 대가성 유무를 가려내기 어려운 풍토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나 관리와 가까이해 두는 것은 미래에 언젠가는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집권하던 1970년대 나는 국회 외무위원으로서 워싱턴을 방문했다. 당시 주미 한국대사 주최 만찬에서 론 네슨 백악관 대변인의 부인인 한국계 여성 신디 송(한국명 송영희)을 만났다. 만찬 후 사석에서 한국에서 온 유명 인사들이 비싼 선물을 들고 그를 만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사람은 서울에 사는 그의 어머니에게 비싼 선물을 들고 와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디 송은 어떤 한국 기업인이나 정치인도 남편에게 소개해 준 일이 없었다고 했다. 그의 남편은 “바쁜 한국 기업인이나 정치인이 왜 나를 만나려고 할까”하며 “이상한 한국인을 만나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다고 한다. 그 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그의 동생이 한국에 왔는데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별 관심이 없어서 이상할 정도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국 현직 대통령의 형이나 동생이 외국에 갔을 때 그곳 한국 대사나 교민들이 얼마나 수선을 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경험에 비춰 내게 100만원 이상을 준 사람 중에 양심적으로 이야기해서 대가성이 전혀 없었다는 사람은 찾기 힘들 정도다. 대가성 없이 공직자를 후원한 사람도 언젠가 그 공직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어떻게 법이 판단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대가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우니 아예 100만원 이상의 금전 거래 자체를 불법화하자는 것이다.

 지난 7월 초 95명의 사법연수생이 연수원 30년 선배인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집단 의사표시를 했다. 여야가 극한적인 대립상을 보이다 국정조사에 합의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 지방경찰청장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이들 예비 법조인들은 두 가지 이유에서 한국 법조계의 잘못된 사고를 표현했다. 첫째, 그들은 과거 선배들의 관행을 고발하는 인상을 줬다. 둘째, 재판 전에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하고 유죄 판결을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이것 또한 한국의 특징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김영란 부패방지법’에 대한 법무부의 의견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부패 정도가 정상적이고 문명적인 토론으로 해결되기에는 너무 심각하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극약처방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을 후진국으로 끌어들이는 두 가지 요건은 부정부패와 집단이기주의다. 집단이기주의 역시 부정부패에서 조장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끝으로 내가 ‘김영란법’을 절대 지지하는 것은 퇴임한 한 대법관이 수십억원의 수입을 보장하는 대형 로펌에 들어가지 않고 ‘전관예우가 재판의 공정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학교를 선택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