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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음식파동은 건강에 앞서 마음을 먼저 해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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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냉장고에 있던 맛가루(후리가케)를 버렸다. 서울지방경찰청의 불량 맛가루 발표 이후다. 가축사료용 채소 가루와 아스콘·담배 가루가 섞인 원료를 맛가루용으로 공급한 업자를 적발했다는 발표였다. 그러면서도 이 원료가 사용된 제품명은 밝히지 않았다. 이에 아이에게 맛가루를 먹였던 엄마들은 아우성을 쳤고, 일부 대형마트는 모든 맛가루 제품을 매장에서 치웠다. 제조업체들은 사색이 됐고, 시장은 혼란스러워졌다.

 사실 나는 공권력이 주도해 한 방 터뜨리는 대형 식품사건들은 그 사건 자체를 의심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1997년 법조기자 시절, 공업용 우지라면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 판결문에서 이런 의심은 시작됐다. 89년에 일어났던 이 사건은 전 국민을 패닉과 분노에 빠뜨렸었다. 8년 만에 정제하지 않은 우지만 식용등급이 아니며, 정제공정을 거치면 먹을 수 있고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판결이 나온 것이었다. 이 판결문을 보았을 때, 무고한 라면에 분노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아연해졌었다. 그사이 해당 라면회사에선 직원 1000명이 직장을 잃었고, 시장에서도 설 자리를 잃었던 게 기억났다.

 그 이후에도 자극적인 식품사고는 줄줄이 터졌다. 기억나는 것만 나열해도 사건 초기 ‘쓰레기 만두’로 지칭됐던 불량만두 파동(2004), 기생충 알 김치(2005), 낙지머리 카드뮴 사건(2010) 등이 있다. 한데 이 모든 사건은 소비자에겐 경악과 분노, 업체엔 심대한 타격만을 남긴 채 인체 유해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 흐지부지됐다. 요즘 연이어 불량식품 사건이 터진다. 쓰레기 참기름, 불량 건강식품, 불량 달걀, 학교 앞 타르범벅 과자 등 듣기만 해도 혐오감이 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불량식품을 ‘4대 사회악’으로 지목한 이래 경찰을 비롯한 식품단속 관련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단속에 나서면서부터다. 기관마다 비위생적인 제조시설과 불량식품 실태를 앞다퉈 공개한다.

 물론 불량식품은 끝까지 추적해 척결해야 한다. 다만 그 목적은 국민건강을 위해서여야 한다. 한건주의식 자극적 폭로주의는 불량식품보다 나쁘다. 나처럼 현장을 지켜봐 알 만한 사람조차 맛가루를 내다 버릴 정도로 식품문제엔 누구나 배포 있게 대응할 수 없다. 건강·생명과 직결되는 음식은 사소한 불신이 생겨도 마음을 다스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을 불신하는 사회는 불안하고 불건강하다. 그런 점에서 늦은 감이 있지만 경찰이 앞으로 불량식품 사건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기관이 안전성 조사를 마친 뒤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등의 매뉴얼을 마련하겠다고 한 것은 다행스럽다. 4대악 한건주의에 국민 심성이 멍들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도 공권력이 해야 할 일이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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