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에 추락했던 스피처·위너 정치재개 선언 … 뉴욕 정가 시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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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엘리엇 스피처(左), 앤서니 위너(右)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 유니언스퀘어에 말쑥한 정장 차림의 엘리엇 스피처 전 뉴욕주지사가 깜짝 등장했다. 히피족의 아지트인 광장은 방송 카메라와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는 전날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유권자들이 5년 전 과오를 용서해줬을 거라 믿는다”며 정치 재개를 선언했다. 1998년 뉴욕시 검찰총장 선거에서 당선된 그는 ‘월가의 저승사자’로 불렸다. 뱅크오브아메리카·AIG는 물론 뉴욕증권거래소까지 부당 거래를 했다가 혼쭐이 났다. 월가의 거물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 곤욕을 치르자 그는 서민의 수호자로 떴다.

 여세를 몰아 2006년 선거에서 공화당 존 파소 후보를 꺾고 뉴욕주 주지사에 올랐다. 그는 취임 후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불법 이민자에 대한 운전면허증 발급을 밀어붙여 서민층을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2008년 7월 16일 스피처가 뉴욕의 최고급 성매매 업소 ‘엠퍼러스 클럽 VIP’의 단골 고객이었다는 NYT 특종 보도로 추락했다. 시간당 1000달러짜리 콜걸 애슐리 알렉산드라 뒤프레와 바람을 피운 사실이 폭로됐다. 화대 지불을 위해 공금에 손댄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지자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정계를 떠났다.

 야인 신분으로도 CNN 등의 방송 토론자로 나서며 와신상담해온 그에게 정계 복귀의 꿈을 다시 꾸게 만든 건 앤서니 위너였다. 위너는 99년 민주당 거물 찰스 슈머 상원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뒤 7선을 하며 차세대 대표주자로 꼽혔다. 그러나 2011년 트위터 팔로어였던 여대생들에게 속옷만 입은 부적절한 사진을 보냈던 게 들통 나 곤욕을 치렀다. 언론의 의혹 제기에 “사실무근”이라며 잡아떼던 그는 사진이 공개되자 거짓말 괘씸죄까지 덧붙여져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후 언론에 모습을 비치지 않던 그는 지난 5월 유튜브를 통해 돌연 뉴욕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모두가 비웃었지만 뛰어난 언변의 위너는 밑바닥을 훑으며 남성과 저소득층 흑인의 표심을 흔들었다. 이전까지 부동의 1위를 달렸던 크리스틴 퀸 후보 진영엔 초비상이 걸렸다. 뉴욕시 하원의장인 퀸은 여성 유권자의 전폭적 지지를 등에 업고 사상 첫 여성이자 동성애자 뉴욕시장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뉴욕시는 민주당 텃밭이라 당내 경선에서 이기면 시장 당선은 떼놓은 당상이나 다름없다. 위너가 불과 두 달도 안 돼 뉴욕시장 선거의 판세를 뒤집어놓자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던 스피처도 출사표를 던졌다.

 뉴욕주지사까지 역임했던 스피처는 ‘백의종군’을 자처하며 뉴욕시 서열 세 번째 자리인 감사관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민주당 내부에서도 논란이 벌어졌다. 위너와 스피처가 여성 유권자로 하여금 민주당에 등을 돌리게 만들어 결국 공화당에 어부지리만 안기는 게 아니냐는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스피처에게 호되게 당했던 월가는 그의 당선 저지 캠페인에 나서는 등 바짝 긴장하고 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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