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공기관 합리화, ‘낙하산 공모제’부터 손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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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효율성이 먼저냐 공익성이 먼저냐’는 공공기관 정책의 오랜 숙제다. 이때 흔히 사용되는 비유가 시골 기차역이다. 철도공사 입장에서 보면 운용할수록 빚이 늘어나니 수익성만 따지면 폐지하는 게 맞다. 하지만 시골 주민들을 위한 공익성 역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공기업의 존재 이유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효율과 공익 사이, 적절한 조화가 필요한데 대개 역대 정권은 공익 쪽으로 기울었다. 선심성 정책이 표나 인기에 도움이 되는 데다 5년 임기 중에만 문제가 안 터지면 된다는 유혹에 쉽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공공기관의 지난해 말 부채는 모두 493조4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전년에 비해 늘어나는 규모는 줄었지만 나라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어제 ‘공공기관 합리화 정책 방향’을 내놓으면서 ‘효율 우선’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그런 점에서 잘 잡은 방향이다. 정부는 효율성·책임성·투명성을 3대 원칙으로 삼아 방만 경영을 뿌리 뽑고 부실을 철저히 관리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자산 2조원 이상이거나 빚이 자산보다 많은 공공기관은 5년짜리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을 의무적으로 내놓도록 했다. 계획대로 빚을 갚지 못하면 경영평가에서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또 중복되거나 제 역할을 못하는 공공기관은 통폐합하기로 했다.

 문제는 실천이다. 당장 4년간 공공기관 채용을 7만여 명 늘리기로 한 것부터 ‘효율 우선’과 맞지 않는다. 시간제 일자리와 임금 피크제, 정년·명예퇴직을 활용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은커녕 공기업에 또 다른 부담을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정책의 핵심인 기관장 인사 시스템 개선 방안도 미흡하다. 전문성 강화만 강조했을 뿐 ‘낙하산 근절’ 대책이 빠져 있다. 지난 정부에서 큰 논란을 빚었던 공모제를 어떻게 손 볼 것인지도 언급이 없다. 전 정권의 공모제는 낙하산 통과 의례용으로 변질돼 ‘무늬만 공모제’란 비판을 받아왔다. 더 끌고 가기 어려워진 제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시장은 정책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