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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 정권 타도한 시민혁명" vs "헌법 짓밟은 쿠데타일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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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왼쪽부터 와흐바 ‘타마로드’ 공동 설립자, 하템 살레 전 산업·통상 장관, 마헤르 ‘4월 6일 청년운동’ 대표.
이상언 특파원

시민 혁명으로 탄생한 최초의 민선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축출된 이후 이집트는 또다시 혼돈 상태에 빠졌다. 시민 혁명과 쿠데타가 뒤엉켜 돌아가는 혼돈의 현장 카이로에서 정변의 핵심 관계자 세 사람을 인터뷰했다. 각각 친무르시와 반무르시, 쿠데타 지지와 반대로 나뉜 이집트의 분열상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무슬림형제단 저항 그리 오래 안 갈 것

반란이란 뜻의 ‘타마로드’는 지난 3일까지 대통령 자리에 있던 무함마드 무르시에 대한 대대적인 반대 시위를 주도한 시민운동 조직이다. 타마로드의 공동 설립자인 마이 와흐바(27)는 “군부가 무르시를 축출한 것은 쿠데타가 아니라 국가·국민을 보호하는 군인의 정당한 임무 수행”이라고 주장했다. 와흐바는 이집트 주간지 알파지르의 현직 기자로도 일하고 있다.

 - ‘타마로드’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4월에 평소 친분이 있었던 나를 포함한 언론계 종사자 4명과 과학기술 전문가 등 총 5명이 친목 모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나라 걱정이 쏟아졌다. 우리는 무르시 대통령의 사임과 새로운 대선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자고 뜻을 모았다. 5명이 공동 설립자가 됐고, 이후 다른 시민단체들과 연계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정회원이 약 1500명이다.”

 - 무르시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했나.

 “2011년 혁명의 정신인 민주적 개혁을 외면했다. 이집트를 종교국가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경제와 민생에는 무능했다. 가장 큰 잘못은 시민들의 사회개혁 요구를 억압하는 ‘정치적 폭력’을 가했다는 점이다.”

 -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한 대통령을 시위와 군부의 개입으로 쫓아내는 게 옳은가.

 “국민들의 뜻이 반영된 시민혁명이다. 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200만 명이 서명에 참여했고, 3000만 명 이상이 전국에서 시위를 벌였다.”

 - 군부의 쿠데타가 아니라는 말인가.

 “군사 쿠테타가 아니다. 그들은 국민과 나라를 지키려는 정당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통치가 아닌 관리만 하고 있다.”

 - 군부가 결국 권력을 장악하지 않을까.

 “시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엄청난 저항을 불러올 무모한 짓을 감행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임시 총리가 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에 대한 타마로드의 입장은.

 “우리는 엘바라데이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이미 표명했다. 대선에 출마하면 그를 지원할 계획이다.”

 - 무르시 대통령을 지지하는 무슬림형제단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데.

 “시위를 벌이고 군과 경찰을 공격할수록 그들은 고립된다. 당분간 혼란은 불가피하겠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무르시 지지자 1000만 … 사태 되돌려야

 “현직 대통령을 감금하고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킨 게 쿠데타가 아니면 무엇이냐.” 무르시 정권에서 산업·통상 장관을 맡아 경제 정책을 이끌었던 하템 살레(45)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살레는 세제·식료품 생산업체 등 여러 기업을 운영해온 사업가 출신이다.

 - 무르시 대통령이 권좌에 복귀해야 한다고 믿나.

 “민주 국가에서는 선거 결과를 뒤엎는 그 어떤 초법적 조치도 정당화될 수 없다. 군부는 민의를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지금 이집트에서는 1000만 명 이상이 거리에서 무르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고 있다. 군의 논리대로라면 이 민의에도 따라야 한다. 군은 더 이상 억지를 부리지 말고 사태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 군과 반무르시 세력은 군부 쿠데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탱크와 총의 힘으로 대통령을 감금하고 헌법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자신들의 뜻대로 과도정부 수반을 지명한 건 명백한 쿠데타에 해당된다. 프랑스 대통령의 경우 지지율이 지금 20%대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군대가 나서서 대통령을 바꾸지는 않는다.”

 - 반무르시 시위자들은 무르시 정권이 경제에 실패했다고 비판한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악화될 수밖에 없는 경제를 그나마 덜 나빠지게 했다고 자부한다. 2011년 혁명 뒤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에 대한 요구가 분출됐다. 혁명 뒤의 사회 불안 때문에 외국인 투자도 줄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점진적 개혁을 추진하는 중이었다.”

 - 무르시 정권의 요직을 무슬림형제단이 독차지했다는 비판도 있다.

 “30명의 장관 중 9명만이 무슬림형제단 소속이었다. 나처럼 무슬림형제단과 관계가 없는 해당 분야 전문가도 기용했다. 무르시는 시민 혁명 세력에서도 인재들을 영입하려 했으나 그들이 대부분 정권과의 협력을 거부했다.”

 - 무슬림형제단의 무력 저항으로 대규모 소요 사태가 발생할 우려는.

 “무슬림형제단은 비폭력적 저항을 원칙으로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 산발적으로 폭력 사태가 발생하고 있지만 조직적인 움직임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큰 문제 없이 선거 치르고 새 출발 할 것

 ‘4월 6일 청년운동’의 대표 아흐메드 마헤르(33)는 2011년 ‘아랍의 봄’의 주역이다. 그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축출한 시민 혁명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마헤르는 그 이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무르시 지지를 선언했다가 최근 반무르시 대열에 합류했다.

 - 지난해 5월 대선 결선 직전에 ‘4월 6일 청년운동’은 무르시 지지를 선언했다. 그런데 이번엔 무르시 축출에 앞장섰다. 스스로에 대한 부정 아닌가.

 “시민혁명 세력의 후보들이 난립해 모두 대선 1차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다. 군부 출신의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당시 우리는 무르시에게서 시민 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고 국가운영에 종교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조건부 지지를 선언했다. 그런데 그는 약속을 어겼다.”

 - 무르시 정권의 가장 큰 잘못은 무엇인가.

 “국가 운영 계획 자체가 없었다. 나는 그동안 무르시를 몇 차례 만나 그에게 노동자의 권익 보장이나 빈민에 대한 복지 프로그램 등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장관들도 만나 사회 개혁 방안에 대해 물어봤다. 그들은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너무나 무능했다.”

 - 정권이 무능하다고 시민과 군이 합세해 대통령을 몰아내는 게 옳은가.

 “우리는 이대로가면 곧 나라가 망한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대통령을 몰아낸 게 아니라 지지를 철회한 것뿐이다. 그가 대선 때 얻은 51.7%의 표 가운데 30% 이상은 민주적 사회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던진 표다.”

 - 소요 사태나 테러 발생으로 이집트의 형편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서너 달 안에 일단 시위는 진정될 것이다. 과거에 몇 차례 무슬림형제단과 연계된 조직이 테러를 일으켰을 때 국민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다소의 혼란은 있겠지만 큰 문제 없이 총선과 대선을 치러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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