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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소리 … 흐리고 습한 날, 관객 만원일 때 나오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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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진일보한 공연 사운드를 만드는 숨은 손 3인방. 왼쪽부터 안성근·송재진·박병준씨. 음향 경력만 20~30년, 아날로그와 디지털 장비를 모두 다룰 수 있는 오디오 허리 세대다. 이들 셋이 서울 방배동 레드브릭 스튜디오에 모였다. 박병준씨가 조용필 19집 앨범 후반 작업을 했던 곳이다. 송재진씨는 “선진국에선 사운드 엔지니어도 예술가 대우를 받는데, 한국에선 푸대접해 아쉽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대중음악계의 중심축은 음반에서 공연으로 옮겨왔다. 콘서트는 지난 10년간 여러 공연 장르 중 가장 급격히 성장한 분야이기도 하다. 공연장의 생명은 사운드다. 넓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대중가요 콘서트에서 ‘소리의 조절’은 가수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다. 조용필 콘서트는 소리의 향연으로 유명하다. 그 주역들을 통해 ‘사운드의 과학’을 알아봤다.


보기 싫을 땐 눈을 감으면 된다. 하지만 듣기 싫을 땐 귀를 막아도 소용이 없다. 소리는 온몸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대신 좋은 소리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조용필 콘서트의 사운드가 그렇다. 그의 공연이 ‘완벽한 사운드’라는 수식어를 당연한 듯 달게 된 뒤엔 음향을 다루는 숨은 손들이 있었다.

 음반 프로듀서 겸 레코딩·믹싱 엔지니어 박병준(44)씨, 공연 시스템 엔지니어인 ㈜ 케빅 라이브사운드팀 안성근(43) 이사, 사운드 시스템 제작사인 미국 클레어 브라더스의 한국 담당 부사장 송재진(50)씨다. 조용필의 ‘헬로’ 상반기 투어를 마무리한 이들을 최근 서울 방배동 레드브릭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안성근 이사는 조용필 스피커 시스템을 공연에 맞게 디자인하고 튜닝합니다. 스피커의 개수, 높이, 위치 등을 정하고 이상적으로 재생되도록 주파수를 컨트롤해놓으면 박병준씨가 뮤지션의 색깔에 맞도록 개별 곡과 악기 구성에 맞춰 세세하게 믹싱하죠. 그에 필요한 스피커·콘솔·앰프 등의 재료를 공급하는 게 클레어 브라더스의 몫이고요. 클레어라는 경주용 자동차를 몬다고 치면 안 이사는 기술자, 박병준은 드라이버죠.”(송재진)

 공연의 사운드는 상황마다 변수가 많다. 공기·온도·습도·관객의 수 등도 계산해야 한다.

 “맑은 날보단 약간 흐리고 습한 날이 좋아요. 소리는 공기중의 매질을 타고 올라가기 때문이죠. 오후 서너 시와 저녁 시간의 소리도 달라요. 지표면 온도가 달라서죠. 낮엔 소리가 뜨고, 저녁엔 가라앉아요. 그래서 시스템 튜닝은 공연 시간에 맞춰서 합니다. 요즘 같은 날씨엔 에어컨을 얼마나 틀어주느냐도 관건이에요. 더울수록 소리가 빨라져 고음은 흡수되고 저음이 많이 들리거든요. 야외는 잔디밭의 습기도 계산해야 해요. 습할수록 소리가 멀리 가기 때문이죠.”(안성근)

 안 이사는 공연 전 여러 포인트에 마이크를 놓고 각종 측정 장치를 써서 시뮬레이션을 한다.

 “객석이 찼을 때와 비었을 때의 소리가 다르기 때문에 그 격차를 계산해 세팅해요. 좋은 좌석부터 먼 좌석까지 고루 좋은 소리가 들리게끔 만들고, 주파수가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100~200개의 스피커와 무선 장비를 조절하는 것도 제 몫입니다. 음향 엔지니어링은 사실 수학이고 물리죠.”(안)

 하지만 가장 큰 건 공연장의 구조다. 이들은 사운드 잡기가 우리나라처럼 어려운 곳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K팝 어쩌고 하지만 공연장 환경은 중국 시골이나 동남아보다 못해요.”(박병준)

 웬만큼 관객을 동원하는 대중 가수는 공연장이 아닌 경기장이나 컨벤션 센터를 쓰기 때문에 스피커를 설치하려면 철골 구조물부터 세워야 한다. 소리의 반사도 심하다. 소리는 당구공이 움직이듯 좌석, 루프 등 온갖 부분에 튕겨 나오며 메아리가 된다.

 “주경기장의 경우엔 2차 반사가 생기는 위치에 스피커 딜레이 타워를 세워 에코를 줄이죠. 조용필 대구 공연은 108m 길이의 실내 컨벤션이라 좌우면과 뒤쪽에 구조물을 따로 설치해 두꺼운 천을 씌워 반사를 막아요. 다행히 가장 심한 바닥 반사는 관객들이 막아줘요.”(안)

 엔지니어들은 관객을 ‘인간 흡음체’라 말한다. 조용필 공연의 사운드가 좋게 들리는 건 늘 객석을 가득 채워 메아리를 흡수해주는 관객들의 몫이 크다. 박병준씨도 “뭐니뭐니해도 관객 없는 공연이 제일 무섭다. 기술과 연주가 아무리 좋아도 분위기가 안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관객이 사운드의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아이돌 가수들의 공연이 그렇다.

 “관객의 고함 소리를 이기냐 마냐의 문제지, 사운드 퀄리티의 문제가 아니에요. 아이돌 공연 하고 나면 스피커 드라이버가 몇 개 망가져요. 사실 소리는 작을수록 균형이 더 잘 맞아요. 장르마다, 곡마다 적당한 사운드 크기도 달라요. 하지만 시종일관 최고 출력으로 틀어야 하니 귀가 피로해지는 겁니다.”(안)

 “조용필 공연에서 ‘비련’을 잘 못 넣었던 것도 같은 이유예요. ‘기도하는!’ 다음에 관객들 ‘악!’ 소리가 나오는데, 연주가 안 들려 가수가 다음 음절 들어갈 타이밍을 잡기 힘들거든요. 하지만 이번 지방 투어에선 목록에 넣었어요. 인이어(가수 모니터링용 이어폰) 시스템 등이 발달하면서 이제 가능해졌죠.”(박)

 박씨는 믹스 데스크에서 실시간으로 사운드를 컨트롤한다.

 “곡마다 연주 상황이 일정치 않으면 엔지니어가 손으로 반응해야 해요. 일단 가수의 목소리 채널엔 항상 손을 놓고 글자 단위로 볼륨을 조절하죠. 가수에겐 노래할 때 습관이 있어요. 같은 단어를 불러도 두 번째엔 소리를 덜 낸다거나, 감정에 빠져서 작게 불러 전달이 안 될 수도 있죠. 그럴 때 볼륨을 올리고 내리고 하는 거예요.”(박병준)

 박병준씨는 한영애·이승환·박정현·임재범·김동률·비·god 등 수많은 가수들과 작업했다. 조용필과 인연이 시작된 건 2005년 평양 공연에서 SBS 방송 송출용 믹스를 담당하면서다.

이듬해 조용필에게 호출을 받아 음향팀에 합류했다. 조용필 19집 음반 프로듀서 겸 레코드 엔지니어도 맡았다. 이처럼 스튜디오와 라이브를 모두 담당하는 엔지니어는 매우 찾기 어렵다. 그는 “둘 다 재미있어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튜디오에선 어쿠스틱 환경을 믿고 악기들의 사운드에 제 귀를 맞추지만, 공연장에선 나를 믿고 그 기준에 사운드를 맞춥니다.”(박)

 녹음실은 실수하면 다시 할 수 있지만 두고두고 평가받고, 라이브는 분위기가 좋으면 ‘사운드 좋다’하곤 지나가는 등 장단점이 있다.

 “눈에 보이는 건 비전문가들도 논평하지만 귀에 들리는 건 착각도 하고 평가를 하기 힘들어요. 선수들은 감안하고 들어줍니다. 일반인을 만족시키기 더 어렵죠. 가수가 멋있어 보이는 건 사운드가 받쳐줘서에요. 사운드 잘못 만져 가수 망하게 만드는 건 되게 쉬워요.”(박)

 하지만 이들 엔지니어가 이렇게 민감하고 치밀하게 일하는 데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꼼꼼”한 조용필의 역할도 크다.

 “마이크의 위치, 높이, 어느 글자에서 어떤 소리가 나느냐, 숨소리의 크기까지 신경 쓰세요. 아티스트는 숨소리에까지 신경 쓰는데, 엔지니어가 그걸 무심결에 들려주면 관객이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해요. 노래 들으며 웃고 울고 뛰며 춤출 수 없는 거죠.”(박)

 “조용필은 보는 그림 자체가 다른 가수들과는 달라요. 밴드 위대한 탄생도 연주 능력이 최상급이라 같은 시스템에서도 효과를 극대화하죠. 준비가 안 된 사람은 아무리 좋은 장비에 엔지니어가 가도 한계가 명확해요.”(안)

글=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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