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중국어 통역 없이는 맥 못 추는 한국 외교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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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형규
베이징 특파원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마쳤다. 정부는 한·중 관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고 홍보한다. 박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파격적 의전이나 언론의 관심을 보면 어느 정도 맞다. 특히 박 대통령의 소프트 외교 덕에 한국에 대한 일부 중국인들의 부정적 시각이 불식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를 어떻게 극대화·지속화하느냐는 거다. 이를 위해선 대중 외교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

 우선 외교부 중심의 단선 외교를 전방위 외교로 바꿔야 한다. 주중 한국대사관의 외교관들 사이에 정보 공유가 안 된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현실은 그렇다. 정무1(외교부)·경제·영사 등 독자적으로 외교 활동을 하는 각 부처 주재관 사이에 기초 정보 빼고는 각자 딴 주머니를 차고 있다. 공사들 간에 정보 공유도 안 될 정도다. 그러니 각 부처에서 파견된 주재관들은 외교관이라 하기에도 민망하다. 뭘 알아야 중국의 카운터파트들과 만나 얘기할 것 아닌가. 이들의 주업이 소속 부처가 시키는 조사와 베이징을 방문하는 본부 손님 접대인 이유다. 세금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요즘 지구촌은 그야말로 ‘기획의 시대’다. 갈수록 다양화·다변화하는 국제사회를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한데 한국 외교 최전방인 대사관엔 기획외교가 없다. 오직 단일 사건 보고와 분석이다. 예컨대 지난해 말 중국 리더십이 10년 만에 바뀌는데 향후 중국 대내외 정책을 분석하는 장기 기획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없다. 외교관들은 말한다. “보고 건수와 그 질로 인사고과를 하는데 누가 몇 달씩 걸리는 기획을 하겠나.”

 있는 외교 자원도 활용 못한다. 중국에는 80만 명의 교민이 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기업인이고 6만 명의 유학생과 대학 교수들도 있다. 각 부문 전문가들도 많다. 특히 기업인들의 경제·정치 관련 대중 정보력이나 현실 파악 능력은 대사관 못지않다. 그런데도 이들을 외교 자원으로 활용하는 시스템이 없다. 그저 가끔 세미나하고 식사하는 정도다. 강대국 사이에서 가능한 모든 외교 자원을 활용해도 생존이 쉽지 않은 게 한국 외교인데 있는 자원까지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외교관의 중국어 구사 능력은 창피할 정도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주중 한국대사관에서는 가끔 4명의 통역 쟁탈전이 벌어진다. 80여 명의 외교관 중 통역 없이 중국 관리와 토론할 수 있는 인사가 10명 내외니 어쩔 수 없다. 박 대통령보다 중국어를 못하는 외교관이 절반이 넘는다. 대중 외교의 틀을 바꿔야 하는 이유다.

최형규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