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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변호사가 직접 소프트웨어 만드는 시대 올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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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호 11면

안기순 대표가 로앤비에서 제공하는 법률정보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로앤비의 차별화한 법률정보 서비스인 ‘3단 비교 보기’와 ‘신구(新舊) 조문 보기’를 개발했다. 최정동 기자

법원과 검찰청을 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법조인들이 얼마나 문서에 의존하는지. 민사재판을 예로 들어 보자. 원고는 ‘소장’을 내면서 소송을 제기한다. 이 소장은 우편을 통해 반드시 피고에게 전달돼야 한다. 그러면 피고는 ‘답변서’를 통해 원고의 주장을 반박한다. 양측은 정식 재판에 앞서 ‘준비서면’을 판사에게 제출한다. 재판 도중에도 서면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법조인들 책상엔 엄청난 분량의 서류들이 쌓여 있다. 서류를 넘겨 보는 데 사용하는 고무골무, 산더미 같은 서류를 운반하는 카트는 법조계의 필수품이기도 하다. 최근 전자소송이 도입되기는 했지만, 한때 법조계만큼 아날로그의 전통(?)을 간직한 곳이 없다는 자조 섞인 얘기도 있다. 이런 법조계에 디지털화 바람을 불어넣는 이가 있다. 로앤비의 안기순(43) 대표이사다.

파워 차세대 <32> 법조 디지털화 선구자 ‘로앤비’ 안기순 대표

로앤비는 법률 관련 콘텐트를 파는 회사다. 법령 8만4000건, 각종 서식 15만 건, 판례 17만1000여 건, 법조인 2만1000명 등 온갖 정보를 제공한다. 한마디로 법조인을 위한 법률 종합포털이다. 현재 법원·검찰은 물론이고 김앤장·태평양·광장 같은 대형 로펌, 국회 상임위, 지방자치단체, KT·포스코·한국전력 같은 대기업, 전국 로스쿨 25곳 등이 유료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안 대표는 “한국판 웨스트로(Westlawㆍ미국의 대표적인 법률정보사이트)가 롤 모델”이라고 말한다.

안 대표는 변호사 출신이다. 1995년 3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법조계에선 ‘프로그래머 변호사’로 유명했다. 연수원 2년차인 97년 윈도용 판례 검색 프로그램을 만든 경력이 있어서다. 안 대표는 “이 프로그램을 하이텔·천리안 등 PC통신에 올려놔 많은 법조인들이 내려받았다. 훗날 법원에서 자체적으로 윈도용 판례 검색 프로그램을 만든 이후에야 업데이트 작업에서 손을 뗐다”고 말했다. 군법무관을 마친 뒤 2001년 곧바로 법무법인 태평양에 합류했다. 그의 업무는 이해완(50)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와 함께 로앤비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이 교수 역시 판사 시절 법률정보 홈페이지인 ‘솔’을 만든 ‘IT 법조인’이었다.

중학교 때 8비트 컴퓨터와 첫 인연
안 대표는 직접 로앤비 구축 관련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했다. ‘3단 비교 보기’(법-시행령-시행규칙을 한 화면에 띄워 비교하는 방식), ‘신구(新舊) 조문 보기’(법령이 개정되면 바뀐 부분을 찾아주는 방식) 등 지금 로앤비의 대표 서비스는 그가 창안한 작품이다. 로앤비가 생길 즈음 IT 붐과 함께 ‘사이버 로펌’이 앞다퉈 만들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라졌고, 로앤비는 살아남았다. 몇 년 뒤 태평양에서 독립했고, 2007년부터 안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이해완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그를 “굉장히 IT 기술에 밝은 친구”라며 “변호사로서의 경력을 희생하고 군법무관을 마치자마자 로앤비에 들어와서 헌신했다. 그래서 경영을 넘겨줬다”고 밝혔다. 로앤비는 지난해 다국적 기업인 톰슨 로이터에 인수됐다. 톰슨 로이터는 로이터통신을 비롯한 금융·법률 정보, 보도 계열사를 둔 지주회사다. 인수 가격에 대해 그는 “비밀 조항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법률 콘텐트 사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 대표는 “서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조계의 특성도 있지만 콘텐트를 돈 주고 산다는 인식이 거의 없어 애를 먹었다”고 설명했다. 로앤비의 영업 담당자들이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은 예사였다. 그러다 보니 처음 5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다. 다행히도 시장은 느리지만 꾸준히 커나갔다. 2005년의 경우 이용자 수는 늘었는데 매출은 그대로인 게 문제였다. 알고 보니 일부 유료 회원들이 아이디(ID)를 여럿이 돌려 썼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PC인증 제도를 도입했다. 로앤비의 강력한 경쟁자는 공교롭게도 정부다. 김대중정부 때부터 ‘전자정부’를 표명하면서 각종 법률정보가 정부·기관 사이트를 통해 무료로 제공되기 시작했다. 법제처의 ‘국가법령 정보’, 대법원의 ‘종합법률 정보’는 물론 법무부와 국회에서도 공짜로 법률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안 대표는 “무료 공공정보와 차별화하는 게 주안점”이라며 “정부 기관이 제공하기 어려운, 논문·주석서·서식 등 저작권 콘텐트를 결합하는 데 힘써 왔다”고 말했다.

안기순 대표(왼쪽)가 쌍둥이 동생 돈순씨와 함께 1988년 서울대에 동반 합격한 사실을 보도한 기사(중앙일보 88년 1월 4일자 10면 지면).

그가 컴퓨터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중학교 때였다. 당시 애플 II, 삼성 SPC-1000, MSX 등 8비트 컴퓨터들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우연히 들른 시내 컴퓨터 가게에서 애플 II를 접했다. 안 대표는 “몇 달 동안 거의 매일 그 가게에 들를 정도로 컴퓨터에 빠졌다. 베이식(BASIC)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어셈블리 단계까지 접어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가게 주인이 눈치를 줘 발길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안 대표가 IT 산업계로 진출할 가능성을 접은 계기였다. 고(故)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미래를 지향해서는 안 되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점들(dots)을 연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잡스의 연설을 인용하면서 “돌이켜보면 그 무렵이 나에겐 한 점이었는데, 컴퓨터에 대해 경이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동안 컴퓨터를 멀리했다. 대학 전공도 법학을 선택했다. 88년 쌍둥이 동생과 함께 서울대에 합격했다. 그는 법대, 동생은 의대에 진학했다.

안 대표는 “법학이 논리적이기 때문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법학은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합리적이거나 형평성 있는 결론을 이끌어 나가는 학문이다. 안 대표의 지론이다. “법령을 들여다 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사람들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다 보인다. 법학을 통해 세상을 속속들이 잘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학문이다.”

입학 후 안 대표는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학생운동을 할 데까지 했다”는 것이다. 뒤늦게 92년 고시공부를 시작해 95년에 합격했다. “어떻게 보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진로를 선택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가 다시 컴퓨터와 만난 것은 95년 연수원 입소 직전이었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면서까지 당시로선 거금인 300만원을 들여 펜티엄 ‘최신형’ 컴퓨터를 샀다. 안 대표는 “지금의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성능이 무척 떨어졌지만 그래도 프로그래밍이란 또 다른 세계의 매력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프로그램을 짜면서 하나의 새 세계를 만드는 기분이 들었단다. 특히 알고리즘(어떤 문제의 해결을 위한 규칙의 집합)을 개발했을 때 큰 기쁨을 느꼈다. 그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내가 지시한 데 따라 결과가 나오는 게 재미있었다. 프로그래밍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화의 핵심은 소프트웨어 분야
로앤비의 주요 고객은 아무래도 법조인이나 법률 관련 업무를 보는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매출 성장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안 대표는 고민 속에서도 회사의 미래를 낙관한다. “법률시장이 앞으로 더욱 커질 테고, 모회사인 톰슨 로이터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해외 서비스를 들여오거나 거꾸로 국내 서비스를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의사·법조인 등 전통적인 전문직 사회도 큰 변화를 겪을 전망이다. 전문직의 업무 영역 중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전형적인 일 가운데 많은 부분이 ICT 기술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공인회계사나 세무사들의 일감이 줄어드는 현상이 거론된다. 법률 분야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선 개인파산 신청서, 이혼 신청서 등 법률 서류를 변호사 대신 작성해 주는 사이트가 생겨나고 있다. 이런 회사 중 일부는 구글과 같은 대기업의 투자도 받았다. 고도의 지적 능력이 필요하거나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에서만 전문직의 경쟁력이 살아남을 거라는 예상도 나온다.

그렇다면 전문직들은 러다이트 운동(산업혁명 당시 기계파괴운동)처럼 이런 시대 흐름을 거부할 것인가. 안 대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맞다”고 역설했다. ICT가 전문직을 대체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선 보완할 수도 있기 때문이어서다. 그는 이렇게 묻고 답했다. “법률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 때 법조인이 프로그램을 익혀 짜는 게 빠를까, 아니면 전문 프로그래머들이 법률을 배워 작성하는 게 나을까. 전자가 더 빠르고 나을 것이다.”

안 대표는 모범 사례로 서선일(44) 변호사를 들었다. 서 변호사는 최근 각종 소송의 인지대·송달료를 계산하는 모바일 앱을 개발했다. 이 앱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계산 결과는 문자 메시지로 전달 가능하다. 그래선지 현직 변호사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그는 “요즘엔 프로그래밍이 그리 어렵지 않다”며 “창조성은 결국 전문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각 분야의 전문가가 직접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서는 게 바로 요즘 유행하는 융합(convergence)”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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