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망해도 노사협약 유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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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기업이 부도가 나 회사 정리절차에 들어가더라도 기존에 노사간에 맺은 단체협약의 효력은 유지된다.

정부가 도산 관련 법령을 통합하면서 부도 전에 맺은 단체협약을 새 관리인이나 채권단이 폐기할 수 있도록 하려던 방침을 재수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재계는 "기업이 회사정리 신청을 하기 직전에 경영진이 '나 몰라라'하는 식으로 노조와 단체협약을 맺고 임금을 대폭 올려주면 기업 회생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법무부는 12일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안'을 이 같은 내용으로 고쳐 이달 중 국무회의에 상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이 법을 입법예고할 당시 기업 회생의 걸림돌을 없앤다는 차원에서 기존 노사협약을 무시할 수 있도록 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관계부처 협의과정에서 노동단체의 반발 등으로 인해 방향이 바뀌었다.

민주노총은 "회사가 망하면 근로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되는데 최소한의 보호막인 단체협약의 효력마저 부인하는 것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논란이 있긴 했으나 현행 회사정리법에 있는 조항을 그래도 유지하는 셈"이라며 "기존 단체협약을 새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폐기하면 노사 분규를 유발해 기업의 경영 정상화에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는 "노조 입장만을 반영한 것으로 신속한 기업 회생이라는 법 제정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며 "경영상 문제가 되는 협약은 채권단이나 새 경영진이 재협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기존 노사협약을 존중하도록 돼 있으나 법원이 허용할 경우 노사간 협의를 통해 기존 협약을 고칠 수 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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