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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괴물은 누가 만들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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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강홍준
논설위원

성서에서는 선과 악이 병립한다. 신과 악마로 표현되는 두 존재는 대화(구약성서 욥기)하기도 하고, 상대방을 시험(신약성서 예수의 광야시험)하기도 한다. 6000년 동안 사람을 두고 벌이는 두 존재 간 대결이 성서에 나타나는 인간 역사다.

이 같은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신과 악마는 인간과 따로 있고, 그 사이에서 인간은 철저히 피동적이다. 인간은 악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며, 나약하고, 몇 번 시련만 받으면 쉽게 포획당한다.

하지만 세속에서는 경험적으로 인간의 피동성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악으로 몰아 몰살할 때 신앙, 주의, 주장을 말하지만 결국은 구실이 아니었을까 싶다. 게다가 극악한 인간인데도 별나지도 않고, 평범하게 생기기까지 했다. 한나 아렌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책임자 루돌프 아이히만에 대해 쓴 책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했다. 너무나 평범하고, 이웃집 아저씨 성품의 남자가 바로 수백만 명을 죽인 학살 책임자라니.

 사람을 조종하는 악의 존재가 인간과 따로 분리돼 있고, 떼어낼 수 있다면 차라리 퇴마사라도 부르면 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무지, 나의 행동으로 인해 남이 어떤 괴로움에 시달리게 될지 느낌조차 없는 불감(不感)이 사라지지 않는 데 인간의 비극은 있다. 무지와 불감이 있는 한 악의 존재는 동화에서처럼 뿔이 달려 있는 게 아니며, 평범한 이웃 아저씨나 여인의 얼굴을 하고 나타날 것이다.

 학교 교사나 교장 등을 만나서 얘기를 듣다 보면 남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전보다 많아졌다는 걱정을 듣게 된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들을 보면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얼마나 아프고 괴로운지 공감하지 못하는 게 마치 불감증 환자 같다고 한다.

 ‘짜증나’와 ‘쩔어(훌륭·대단·너무하다의 은어)’를 입에 달고 사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그런데 두 용어는 너무 많은 감정을 함축한다기보다 다채로운 감성의 세계를 회칠해 버린다.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는 “감정의 세계는 다채로운 수백 가지의 색깔이 있는데 중·고교 아이들을 보면 짜증과 쾌락을 왔다갔다하는 ‘블랙-화이트’ 두 가지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사이코패스는 뇌의 전두엽 부위가 훼손돼 남의 감정에 대해 머리로만 해석이 가능하지 정서적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환자들이다. 과거에 비해 지금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 이런 환자들이 더 많아졌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뇌의 전두엽 이상자 수가 늘어난 것일까. 오히려 태어난 뒤 세상을 살면서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감성이 훼손된 건 아닐까.

 최성애 심리학 박사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결혼한 부부들이 맞벌이로 쏟아져 나왔는데 이때 태어난 아이들 중엔 태어나서부터 부모와의 애착이 형성되지 못한 아이들이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말 못하는 아이라도 젖을 먹여주면 엄마와 눈을 맞추고 체온과 표정을 나누게 된다. 이 시기에 부모가 같이 있을 수 없고, 자녀의 보육을 어린이집 등에 맡기다 보니 엄마와의 애착 단절 현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제대로 반응을 받지 못한 아이에게 사람이란 장난감과 같다. 갖고 놀다 때가 되면 놔두는 것.

 그런 아이들이 커서 학교로 나오면 모두가 공부만 되뇐다. 물론 지식 위주 공부고, 좋은 대학 가기 위한 공부다. 누구나 다 공부하고, 경쟁은 심해지는데 숨막히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어른들은 “그땐 다 그런 거야”라고 청소년들에게 이성적으로 다가간다. 서로 말이 잘 통할 리 없다. 그러니 어른들 눈엔 아이가 항상 화난 것처럼 보인다.

 요즘 ‘중2병’에 대한 분석이 한창이다. 통제 불가능한 충동적 아이를 ‘중2병’ 걸린 아이라고 부른다. 자, 이제 물어보자. 누가 ‘중2’를 괴물로 만들었는가. 지금 어른들이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비겁하기까지 하다. ‘중2’라고 신기해 말고, 그들이 왜 힘들고, 짜증나는지 물어보라. 그리고 반응하라. 그들의 죽어 있던 감성을 되살리도록.

강홍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