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클리닉] 가정생활 뒷전인 남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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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속이 답답하네요. 지난 연말에 제 속이 터졌던 얘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진영이네 자동차 바꿨어?"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날 현관에서 마주친 옆집 아주머니가 묻는 거였어요.

"우리가 차 바꿀 돈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차?"

"오늘 아침에 진영이 아빠가 검은 스포츠카를 타고 나가던데…."

어리둥절한 저의 대답에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라고요. 순간 저는 현관 앞에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어요.

이게 제가 6년 동안 끙끙 앓고 살아온 문제입니다. 결혼 6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보증금 3천만원에 월 40만원짜리 월세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여섯살짜리 딸과 네살짜리 아들이 있어요. 돈 들어갈 곳은 점점 많아지는 형편입니다. 이런 처지에 스포츠카가 웬 말입니까.

아내와 아이들은 어떻게 살든 말든 자기는 명품으로 치장을 하며 온갖 폼을 다 재고 다니는 게 제 남편입니다. 정말 철없는 사람이지요.

미리 의논이라도 했으면 말리기나 했지요. 저랑은 얘기를 안 해요.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개인적으로 주변에 어떤 일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어요. 스포츠카 사건처럼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듣지요. 아이들 교육문제, 집안 살림살이도 마찬가지예요.

관심이 없어요. 아이들 키울 때 기저귀 한번 갈아준 적이 없어요. 남편이랑 함께 하는 결혼기념일, 아빠가 축하해주는 아이 생일은 우리 가족에겐 사치입니다. 평상시에도 남편과 외식이나 쇼핑은 꿈도 꾸지 못하지요.

온라인 통장으로 들어오는 월급으로 근근이 살아가지만 아이들과 저는 사는 꼴이 말이 아닙니다. 그사람은 통장으로 나오지 않는 수당이나 보너스는 혼자 다 챙겨서 자기만 써요. 스포츠카도 나중에 다그치니까 연말 보너스 등을 보태 구입한 거라고 하더군요.

야간 대학에 편입했다는 사람이 거의 매일 술에 취해 밤 늦게 들어오고. 어쩌다 일찍 들어오면 밀린 잠 자기에 바빠요. 또 휴일이면 홀로 배낭 챙겨 여행을 떠나고. 그러다 보니 남들처럼 여자 문제로 갈등을 겪은 적도 있어요.

지난 6년 동안 싸움도 많이 했어요."당신은 총각이나 홀아비가 아니다. 가정을 돌봐야 한다"고 울면서 호소도 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요즘은 이렇게 말하면 심한 욕을 하며 손찌검까지 해요.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부탁도 해봤지요. 그러나 제가 남편한테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핀잔을 듣습니다.

이것 저것 다 치사한 생각이 들어 저도 이제 대화를 안 합니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한 여자의 남편, 두 아이의 아빠 역할을 다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그 사람이 정말 미워요.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친정 오빠 말대로 이혼하고 새 생활을 시작하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 다른 남편.아빠들처럼 가정적으로 바뀔까요?

부천에서 진영(가명)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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