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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가다] 산업폐기물 재활용기술개발사업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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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내버린 플라스틱 그릇으로 석유를 만들고, 못쓰는 전자기기에서 금을 뽑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기술부의 21세기 프런티어 연구개발 사업의 하나인 '산업폐기물 재활용 기술개발사업단'이 그 주인공.

2000년 6월 사업단을 만들어 시작한 연구개발이 하나씩 성과를 거둬 곳곳에 소규모 시험 공장(파일럿 플랜트)들이 들어서고 있다. 폐기물을 바탕으로 자원 부국의 꿈을 일구는 현장을 찾아봤다.(편집자)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청원공단의 한국컴퓨터리사이클링㈜ 공장. 작업대 앞에 선 네명의 직원들이 전동 드라이버 등 각종 공구를 놀려가며 헌 PC를 분해하고 있다.

따로 뗀 회로기판(PCB)은 각종 컴퓨터 칩이 붙은 채 특수 기계로 옮겨진다. 기계는 기판과 칩을 잘게 부수고, 함유 성분에 따라 몇 무더기로 나누어 놓는다.

그중 한 무더기가 또다른 기계로 옮겨져 각종 화학처리를 거친다. 최종적으로 나오는 것은 작은 24K 순금 덩어리. PCB와 칩속에 들어 있던 금 성분이 한데 모인 것이다.

이 회사는 PCB 등에서 금만큼 비싼 귀금속인 팔라듐을 비롯해 구리.니켈 등 각종 금속들도 뽑아낸다.

헌 PC가 각종 금속의 '광산'이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버려지는 PC가 2백만대. 이 속에는 금만 해도 약 1.5t(시가 1백50억원) 가량 들어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컴퓨터리사이클링은 폐기물재활용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 서울대.인하대 등과 함께 전자기기에서 귀금속 등을 자동으로 뽑아내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 책임자인 최준철 기술연구소장은 "종전에는 PC 분해는 우리가 했으나 정작 금을 뽑아내는 것은 외국업체에 맡겨왔다"면서 "외국업체는 PCB 속의 금을 90%정도 추출하는 정도이고,우리 기술로는 95% 이상 가능하다"고 말했다.

PC 등을 1차 분해한 뒤부터의 전과정을 자동화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최소장은 "휴대전화 단말기는 무게 비율로 본 금 함유량이 PC의 두배"라면서 "한해 1천만대가 버려지는 휴대전화는 또다른 금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컴퓨터리사이클링은 폐기물재활용사업단의 연구개발 과제 중에 가장 먼저 실용화에 접어든 사례다.

이뿐 아니라 사업단은 쓰레기 태운 재를 특수 처리해 적조 제거 물질로 만드는 기술 등 20여 분야의 기술 개발에 성공해 파일럿 플랜트를 세웠다.'제오플럭'이라는 적조 처리 물질은 부경대 환경연구소 이제근 교수 등의 작품.

지난해 8월 적조가 한창일 때 경남 고성 앞바다에서 효능 실험을 했다. 황토의 5분의 1만 써도 마찬가지의 적조 제거 효과를 내는 것이 확인됐다. 또 황토는 수면의 적조만 없애는데 제오플럭은 바다 밑바닥의 적조까지 제거했다.

이강인 사업단장은 "진행 중인 연구 중에 5~6개 분야는 올해 안에 상용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가장 빨리 연구 결실을 맺고 있는 사업단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재활용 연구의 대상이 되는 폐기물도 다양하다. 전자기기.플라스틱을 비롯해 라면 공장에서 면을 튀기고 난 식용유, 제철공장에서 나오는 쇠 찌꺼기, 생선 담는 스티로폼 상자, 다 쓴 전지, 헌 타이어, 공장에서 나오는 각종 먼지까지 망라한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나오는 산업.생활 폐기물 20만t의 대부분을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목표다.

플라스틱에서 석유를 뽑아내는 연구도 성과를 거뒀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신대현 박사가 이끄는 프로젝트다.

지난해 하반기에 하루 3백50t의 못쓰는 플라스틱에서 석유 2백50t을 뽑아내는 시험용 설비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신박사는 "국내에서 한해에 버리는 플라스틱을 모두 재처리하면, 연간 1백만t의 석유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플라스틱이 석유를 원료로 만든 것이어서 플라스틱을 잘 처리하면 다시 석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 뽑아낸 석유는 대부분 경유며 휘발유.등유.중유 성분이 약간씩 들어 있다. 이를 따로 분리하지 않고 산업용 연료로 쓴다.

사업단은 연구개발 관리가 철저하기로 정평이 났다. 대덕연구단지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내에 있는 이강인 사업단장 사무실의 책상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가 있다.'▶1월 23일:포항▶24일:울산.부산▶2월 7일:인천.홍성▶11일 정읍.나주▶13일:진주▶19일:영월'

참여 대학.기업의 연구진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 지 살피기 위해 평가위원단과 함께 연구 현장을 방문하는 일정이다. 이렇게 일일이 현장을 확인하고 평가해 매년 성과가 미흡한 연구팀 두곳을 탈락시킨다. 지금까지 네개 팀이 고배를 마셨다.

진행 중인 연구개발 과제는 총 32개. 박사 1백93명 등 5백91명이 참여하고 있다. 쓰레기를 태울 때 나오는 가스를 연료로 만드는 기술 등 6개 과제는 미국.일본.독일과 국제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모든 연구과제에 기업이 참여하는 것도 이 사업단의 특징. 기술 개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사업화하는 것이 목표다.한마디로 '경제성을 갖춘 폐기물 처리 기술'을 찾아내 완성하는 연구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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