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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100t 장식된 침실…세계서 가장 비싼 요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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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상진 기자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고인이 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 호화 요트를 소유했거나 갖고 있는 독재자들과 부호들입니다. 요트가 꼭 이런 사람들의 전유물일까요.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요트를 타면서 모험정신을 기르고 극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인내를 시험하는 요트족(族)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요트의 세계를 살펴봤습니다.

우리나라 요트 수는 7000여 척, 요트 면허자는 6000여 명이다. 요트 면허는 없지만 요트를 타고 즐기는 인구까지 합치면 요트 인구는 5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전국 10곳에 44개 마리나(marina· 요트, 모터보트 등 선박을 위한 정박시설) 건설을 추진하면서 요트 열기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요트문화는 초보 수준이다. 부자들만의 전유물로 인식되면서 일반 대중들 사이엔 사치스러운 해양스포츠란 거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서양의 300여 년 요트 역사에 비할 수는 없지만 우리 조상들은 요트와 비슷한 돛단배를 운송수단으로 이용했었다. 요즘에는 소형 요트를 생산하는 업체가 10여 개 있고, 단독 세계일주에 성공한 한국인도 3명이나 된다. 요트와 돛단배는 돛에 바람을 받아서 나아가는 점은 같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만(灣)에서 지난해 10월 4일 열린 2011~2013 아메리카스컵 월드 시리즈(ACWS) 경기에 참가한 요트들이 바다에서 대기하고 있다. [사진 Guilain GRENIER]

 돛단배는 뒷바람을 받아 나아가지만 요트는 맞바람을 받아야 한다. 요트가 맞바람을 헤치고 항해할 수 있는 원리는 요트 바닥 밑에서 물 밑으로 내려져 있는 킬(Keel) 때문이다. 요트 길이와 세일(돛)의 높이에 따라 배마다 깊이가 다른 킬은 요트가 바람에 의해 옆으로 밀리는 것을 막아준다. 우리의 돛단배에는 킬이 없다.

 이 때문에 요트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인 ‘풍상(風上)’ 방향의 정면에서 좌우 45도 안쪽 범위(No go zone)를 제외하고는 원하는 방향을 향해 ‘지그재그’로 나아갈 수 있다. 여기에 비행기가 뜨는 원리가 적용된다.

 세일의 천이 바람을 맞아 반달 모양으로 휘어지면 세일 앞면과 뒷면이 받는 공기 속도는 달라진다. 굽어진 세일 앞면을 지나는 바람의 속력은 빠르고, 뒷면 속력은 느리다. 양력(揚力)이 생기는 것이다. 요트가 받는 바람 속력은 빠르다. 그래서 기압이 낮은 쪽으로 나아간다. 돛이 항공기 날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바로 ‘베르누이의 정리’다.

 킬은 바람을 가득 안은 돛의 압력을 이길 수 있는 크기로 설계돼 있어 요트 전복사고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근대 올림픽보다 앞선 요트대회 역사

 바람을 이용한 돛단배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람의 방향에 관계없이 자유자재로 항해할 수 있는 근대적 의미의 요트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시작됐다. 1660년 영국의 찰스 2세가 즉위할 때 네덜란드에서 선물한 수렵선 두 척이 요트의 시초다.

 이후 유럽의 여러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 요트가 전파되었고, 1720년에는 아일랜드에서 세계 최초의 요트클럽인 코크하버워터클럽(Water Club of the Harbour of Cork)이 창설되었다.

 1849~1880년 미국과 오스트리아, 영국 등에서 요트협회가 만들어지면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쪽으로 퍼져나갔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여름올림픽 경기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나 기상 악화로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 대회부터 경기가 열렸다. 1907년에 설립된 국제요트경기연맹이 경기 규정을 만들고 경기를 주관했다. 1996년 연맹의 명칭은 국제세일링연맹(IntISAF)으로 바뀐다.

 최초의 요트대회는 1662년 영국의 찰스 2세가 그의 동생 요크 공작 제임스와 함께 템스강 37㎞ 코스에서 100파운드 상금를 걸고 벌인 레이스로 알려져 있다. 국제대회로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요트경기는 ‘아메리카스컵(America’s Cup)’ 대회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요트는 수조원짜리

 아메리카스컵은 1851년 영국 남부 와이트섬을 일주하는 경주에서 시작됐다. 신생국 미국의 아메리카호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개최한 요트 대회에서 해양강국인 영국을 물리치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대회 이름이 아메리카스컵이 된 유래다. 이후 영국은 모든 해양기술을 동원해 미국에 대항할 배를 만들었지만 한 차례도 미국을 이기지 못했다. 미국이 국력 면에서 영국을 따라잡는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됐다. 이후 미국은 1983년 호주에 우승컵을 빼앗기기 전까지 무려 132년간 우승을 싹쓸이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개발한 미국 요트의 독주는 미국의 패권을 상징했다.

 162년 역사의 아메리카스컵은 근대 올림픽(1896년)보다 45년 앞섰고, 데이비스컵 테니스 대회(1900년)나 월드컵 축구대회(1930년)보다 역사가 훨씬 오래됐다. 역대 우승국은 미국·호주·뉴질랜드·스위스 등으로 미국과 유럽에 편중돼 있다. 아메리카스컵 주최 측은 요트에 대한 관심을 세계적으로 넓히기 위해 아시아와 중동 등 세계 도시를 도는 요트경기를 계획하고 있다.

 아메리카스컵은 국가를 대표하는 2대의 요트가 1대1로 맞붙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국가 대항전의 성격을 띠지만 국가대표가 아닌, 각국 클럽 팀이 출전한다. 대회는 3~4년마다 한 번씩 열린다.

 기상 여건에 따라 성적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며칠 동안 경기를 한다. 아메리카스컵 출전 팀은 자국의 기술로 만든 배로 참가해야 한다. 배의 길이·너비·무게 등 규격에 대한 제한이 없다. 이 때문에 선수들의 실력 못지않게 출전국의 요트 건조 기술, 돈과 자존심 싸움이 치열하다. 최첨단 소재와 역학기술을 총동원해 만드는 요트는 제작비가 수백억원대인 것도 많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요트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 말레이시아 사업가가 갖고 있는 길이 200m짜리 요트다.

 건조비가 수조원으로 알려진 이 요트는 닻과 갑판, 침실에 금과 백금 등 귀금속이 약 100 t 사용됐다고 한다. 내부장식에는 귀금속 이외에 운석 파편과 공룡 뼈도 일부 사용되었다.

 2위는 러시아 부호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보유한 ’이클립스‘호다. 건조비는 3억5500달러(4096억원)가 들어갔다. 길이 170m인 요트 내부에는 피트니스 클럽, 미용실, 사우나실을 갖췄다. 요트 승무원은 80여 명이다. 자체 미사일 방어 시스템과 헬리콥터 착륙장 두 곳을 갖췄고 소형 잠수함도 실었다. 소형 잠수함은 요트가 침몰할 때를 대비한 탈출용이라고 한다.

 침실 주위는 장갑차처럼 철판을 붙였고, 창문에는 방탄유리를 끼웠다. 개인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레이저와 방해전파를 발사해 사진촬영과 도청을 차단한다고 한다.

 세계의 부호들은 요트로 부를 과시하지만 작은 요트로 세계일주를 하면서 자신과 고독한 싸움을 벌이는 요트족(yachtie)이 더 많다.

 세계 바다를 일주한 첫 기록은 1967년 영국의 프랜시스 치체스터(당시 65)가 세웠다. 길이 16m짜리 ‘집시 모드’ 4호를 타고 4만5000km 바다를 혼자서 226일 동안 항해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까지 단독 요트 세계일주에 성공한 사람은 300여 명에 이른다. 전 세계 바다에 4만여 척의 요트가 항해 중인 현실에서 요트 세계일주 기록은 이제 별것이 아니다. 다만 최연소, 최고령, 장애인들이 세운 세계기록들만 가치를 인정받는다.

 최연소 기록은 네덜란드 소녀 로라 데커(16)가 지난해 1월에 세운 기록이다. 로라는 길이 11.5m짜리 소형 요트 ’구피‘호로 세계일주에 성공했다. 그러나 로라가 세운 세계일주 기록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네덜란드 법원이 어린 로라의 항해가 위험하다며 금지했다가 출항을 허가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세계항속기록협의회(WSSRC)는 앞으로 이 분야의 ‘최연소’ 기록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세운 기록은 영국의 청각장애인 게리 휴즈(55)가 지난달 세운 기록이다. 그는 210일 만에 세계일주를 마치고 지난달 8일 영국 스코틀랜드 에이셔앤드애런 트룬 항구에 무사히 도착했다.

단독 세계일주 기록자는 300여 명

세계일주에 성공한 윤태근 선장이 해운대 수영만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송봉근 기자]

 최고령 기록은 2005년 일본의 할아버지 사이토 미노루(71)가 234일 만에 세운 기록이다.

 항구에 들어온 그에게 환영객들이 “고생이 많았다”고 격려하자 “고생은 뭘… 요트가 세 번밖에 안 뒤집혔는데…”라며 “젊은이들이 배짱과 용기를 갖고 세상에 나아가라”고 당부했다.

 세계일주를 하는 동안 항구에 들르지 않는 무기항(無寄港) 기록은 69년 4월 영국의 로빈 녹스 존스턴(당시 30)이 세웠다. 그는 영국을 출발해 아프리카 희망봉, 남미 케이프 혼을 도는 4만6329km의 코스를 312일 만에 마쳤다. 특히 그는 150일 동안 모든 연락이 두절됐다가 항해를 마무리해 사람들을 열광케 했다.

 무기항은 기항보다 몇 배 어렵다. 돛이 찢어지고, 요트가 고장나도 항구에 들르지 못한 채 해상에서 선장 혼자서 기술로 해결해야 한다.

 요트로 처음 세계일주에 성공한 한국인은 1987년과 91년 두 차례 항해에 나선 독일 파견 간호사 출신의 김영희씨. 97년엔 재미동포 강동석(97년)씨도 일주에 나서 꿈을 이뤘다. 두 사람의 요트 세계일주는 모두 외국 선적 요트로 외국의 항구를 떠났다가 입항한 경우다.

 한국 국적의 요트가 한국을 떠나 한국으로 들어온 첫 기록은 2011년 6월 윤태근(당시49) 선장이 세웠다. 그는 11.3m(약 37피트)짜리 요트 ‘인트레피드’호를 타고 605일 만에 5만7412㎞, 28개국을 거쳐 부산 수영만으로 들어왔다. 윤 선장은 애초 1년 계획으로 출항했지만 태풍을 피하고 항해 중에 바닥난 경비를 마련하느라 일정이 늦어졌다.

 그는 “요트는 부의 과시물이 아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청소년들이 요트를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무기항 세계일주를 준비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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