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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그들은 나를 격려하려고 고통을 견디며 사는지도 모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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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만나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사람이 있다. 내게 이런 선물 같은 사람은 시각장애인 여성 안마사다. 그녀는 스물한 살에 시각장애인이 됐으니 눈앞을 가린 어둠 너머에 얼마나 밝은 세상이 있는지 안다. 그녀를 알고 나서야 사람이 한순간 시력을 잃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상상해 보았다. 갑자기 시력을 잃는 상황을. 몸서리쳐졌다. 좌절과 절망. 나로선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밝다. 늘 웃는 얼굴이다.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좌절의 지하까지 파보고,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꿈틀거리며 한길로 전력을 다해 달렸더니 살길이 열리는 걸 경험하면서 행복해졌다”고 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성실하다. 그녀의 작은 안마방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고, 늘 화분에선 꽃이 피고 푸른 식물이 자란다. 천 끊어다 직접 옷을 만들어 입고, 언제나 단정하고 적당히 멋도 부린다. “남들 눈에 누추하게 보이는 건 민폐”란다.

 그런 밝은 에너지 때문에 그녀를 만나면 저절로 편안해진다. 그녀에겐 희망이 있다. “줄기세포 실험이 성공하면 볼 수 있을 거예요. 10년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 부지런히 일해서 수술비를 마련해야죠.” 그때부터 나도 지구 위 어느 곳에서든 빨리 줄기세포 실험이 성공하기를 기원하게 됐다.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어제까지 우울증으로 밑바닥을 헤매다 지금 다시 기어올라 오느라 애쓰는 중”이라고 했다. 그 며칠 전, 한 남자 손님이 와서 애써 새로 꾸며놓은 방을 보곤 ‘눈도 안 보이면서 뭐하러 이런 데 돈을 쓰느냐’ ‘뵈는 것도 없으면서 귀고리는 왜 하느냐’는 둥 비아냥대며 조롱했다는 것이다. 어둠 속에 혼자서 그 조롱을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그녀를 생각하니 내 피가 거꾸로 돌 지경이었다. 그녀는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이 일로 나도 기분이 밑바닥을 헤매고 있던 중에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시청각 중복장애 사제인 키릴 악셀로드 신부의 방한 기사를 봤다. 청각장애자로 사제가 된 후 시력까지 잃었다는 71세의 악셀로드 신부는 쉬지 않고 전 세계를 돌며 사목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을 이끈 키워드 ‘격려(encouragement)’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서.

‘격려’. 보통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장애인들로부터 감동과 함께 삶을 격려받은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거다. 한데 수많은 장애인이 소위 정상인을 자부하는 비장애인들을 격려하는 만큼 장애인은 비장애인에게서 격려받고 있을까? 그들을 비아냥거리고 조롱하고 차별하지 않았어도 그런 세상을 수수방관하지 않았나? 반성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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