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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꼭 농사가 아니어도 좋다 떠나보라, 할 일은 많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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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
김승완 외 8명
남해의봄날
207쪽, 1만3800원

언젠가는 떠나고 말리라, 이 거대한 도시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적자생존의 게임에서 벗어나리라, 향긋한 흙냄새와 청명한 공기를 마시면서 여유롭고 한적한 삶을 즐기리라.

 도시인이라면 한 번쯤 해본 다짐이다. “언제, 어디로, 뭘 하면서 살 거냐”라 묻는다면 “아, 조금 더 있다가”라고 대답하곤 한다. 돈을 더 모으고 나서 말이다. 지금 당장 할 줄 아는 것도 없기에.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기에….

 갈수록 높아지고 휘황찬란해지는 서울의 빌딩숲.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탈출을 꿈꾼다. 그러나 대부분은 떠나지 못한다. 점점 빨라지는 서울의 시계추. 잠시라도 멈추면 대열에서 이탈이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남의 얘기일 뿐이다.

 이 책은 스스로 대열에서 나온 사람들의 얘기다. 이들은 모두 30~40대였고, 서울을 탈출해 지방의 소도시나 시골 마을에 자리잡았다. 이유는 제각각이다. 한 연극인은 월세와 대관료에 시달리지 않으며 자유롭게 공연하고 싶었고, 직장인은 늦은 퇴근과 이른 출근에 지쳐 있었다. 새 보금자리에서 시작한 일도 모두 다르다.

 기자로 일하던 어떤 이는 제주에 정착해 직접 내린 커피와 오므라이스를 파는 카페를 열었고, 출판사 직원은 충북 괴산에서 축제 기획자 겸 뮤지션으로 변신했다. 중국음식 프랜차이즈업체에서 일하던 이는 전북 익산의 재래시장 한 켠에 요리교실 겸 볶음밥 전문점을 열었다.

 시작도 과정도 달랐지만 이들 모두가 얻은 것은 행복하고 가치 있는 ‘오늘’이었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삶은 공동체 안에 단단히 뿌리내렸다. 대도시의 화려함이나 편리함은 없지만 필요한 것을 내 손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기쁨이 있었다.

 이 책에는 기획 의도를 설명하는 머리말이나 추천사가 없다. 화자 9명이 자신들의 탈출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서술할 뿐이다. 성공 스토리도 있지만 실패한 것 같다는 고백도 있다. ‘이 책에서 하려는 얘기가 뭐지’ 의아해지다가 책 중반을 넘어서면 깨닫게 된다. “농부나 어부가 돼야만 시골에서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는 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한 책”이라는 것을 말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경남 통영의 작은 출판사이자 이 책을 낸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 본인의 체험담이다.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려 갔던 통영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그는 그제서야 기획의도를 밝힌다.

 “서울을 떠나도 우리가 할 일은 존재하고, 길은 어디든 열려 있다. 불안한 미래를 위해 오늘을 저당 잡혀 움켜쥐려고만 했던 그 무엇을 내려놓을 용기만 낸다면 열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 될지도 모른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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