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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변변한 사랑 한 번도 못하고 31세에 짧은 생 마감한 슈베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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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슈베르트는 31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변변한 사랑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갔다. 그가 21세가 되던 1818년에 에스테르하지 백작가의 음악 가정교사로 채용돼 헝가리에 있는 대농원의 저택에서 그의 두 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던 중 카롤리네와 사랑에 빠졌다는 영화 ‘미완성 교향곡(1934년, 영국과 오스트리아 합작)’의 내용은 사실 무근으로 밝혀지고 있다.

전기 작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로맨스는 없었고 그 귀족의 집에서 하인이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고 빈에 돌아오자마자 안 좋은 추억을 잊어버리기 위해 친구들과 축배를 들었다고 한다. 오히려 그가 사춘기였던 17세 때 작곡한 F장조 미사곡을 초연해 빈에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렸을 때 소프라노 독창을 맡았던 이웃 상인의 딸 테레제 그로프야말로 슈베르트가 평생을 잊지 못했던 짝사랑이었다는 얘기가 더 사실에 가깝다.

이처럼 여인과의 사랑에는 미숙했던 슈베르트에게 그를 후원한 친구들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가곡의 황제’ 슈베르트는 길거리에서 굶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오선지를 살 돈이 없어 담배 종이의 여백에 작곡할 정도로 무일푼일 때가 많았지만 도무지 불평이라고는 할 줄 몰랐고 작곡을 위한 자기만의 작업실이 없어도 피아노를 살 돈이 없어 기타로 작곡을 해도 그의 작곡은 멈출 줄을 몰랐다.

슈베르티아데. 슈베르트의 친구들이라는 뜻의 이 신조어는 후대에 음악사가들이 붙여 주었고 빈에서는 지금까지 해마다 슈베르트의 성악과 실내악을 연주하는 슈베르티아데 음악회를 열고 있다. 시인인 친구가 시를 쓰면 슈베르트는 거기에 곡을 붙였고 성악가인 친구는 노래를 불렀다.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작품번호 547번 ‘음악에’는 그의 든든한 재정적 후원자이자 시인이었던 쇼버의 시에 붙인 음악이다. 가곡 ‘들어라, 들어라 종달새를’은 친구들과 교외의 맥주집에서 담소하는 사이에 작곡했다. 친구였던 화가들이 남긴 그의 모습 중에는 마차를 타고 예닐곱 명의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장면도 남아 있다.

이 중 다소 방탕한 생활을 즐겼던 누군가에 이끌려 유흥가를 드나들다 매독에 걸리게 되어 이 때문에 사망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그의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티프스 감염이라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

질병으로 인해 곧 죽게 될 것이라는 공포 속에서도 슈베르트는 작곡을 멈추지 않았고 ‘3대 가곡’이라 일컫는 백조의 노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그리고 겨울나그네 같은 주옥 같은 연가곡을 모두 사망 3년 전부터 작곡했다. 군대에도 못 갈 정도로 작은 키, 노인처럼 앞으로 굽은 몸, 지독한 근시로 안경을 써 세속적인 매력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슈베르트를 죽음의 순간까지 오선지 앞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한 힘은 친구들의 조건 없는 우정이었다.

31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유명 음악가 중에서 최단명을 기록한 슈베르트. 세상을 살면서 진정한 친구를 하나만 얻어도 행복하다고 했거늘 그런 친구들을 수십 명이나 두었던 슈베르트보다 행복한 삶이 어디 또 있으랴.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041-551-5503

cafe.daum.net/the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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