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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얼마나 평화로우면 욕망이 멈추는 땅이라 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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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방비엥 송강의 나무다리를 건너 찾아간 마을. 과자와 음료, 담배 등을 파는 가게는 마치 추억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라오스에 가거든 사원이나 경치 구경보다는 사람을 보라. 어렵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미소를 지어주는 순박하고 선량한 얼굴들. 가진 것 별로 없지만 구걸하지도 않고, 욕망을 채우려 아우성치지 않는 착한 사람들을 보라. 그곳에 사는 개나 고양이도 병아리를 탐하지 않는다. 사람도 가축도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더라. 지난달 9일 인도차이나 반도의 작은 나라 라오스(Laos)로 날아갔다. “베트남에선 오토바이를, 캄보디아에선 돌을, 라오스에선 사람을 보라는 말이 있더군요.” 인도차이나 3개국에서 두루 살아온 가이드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가난 속의 여유·미소 … 전통 생활방식 간직

루앙프라방 근교의 농촌 풍경.

인도차이나는 일반적으로 옛 프랑스령 식민지인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3개국을 가리킨다. 이들 국가는 메콩강(Mekong River)을 끼고 유사한 삶을 꾸려나가는 듯하면서도 조금씩 개성이 다르다. 세 나라 모두 독립왕국으로 존재했으나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뒤 각각 독립했다.

그중에도 문호를 가장 늦게 개방한 라오스는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에 비해 세상에 덜 알려졌고, 그만큼 전통적인 생활 방식과 문화도 덜 훼손됐다. 그래서인지 라오스에선 여행자들이 바가지 요금을 쓰는 경우가 드물다. 돈을 달라고 쫓아오는 거리의 아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라오스에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같은 유명한 사원이나 베트남의 하롱베이(Ha Long Bay) 같은 비경의 바다는 없다. 하지만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과 여행자를 친절하게 맞아주고 배려해 주는, 자연을 닮은 순박한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인들은 말한다.

“베트남인들은 쌀을 심는다. 캄보디아인들은 쌀이 자라는 것을 본다. 라오스인들은 쌀이 자라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라오스 독립의 상징 아뉴봉 왕

비엔티안 메콩강가의 태국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 아뉴봉 왕 동상.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Vientiane)에 도착한 날 밤, 창문을 흔드는 소리에 잠이 깼다.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고 보니 검은 구름 사이로 번개가 번쩍였다. 점점 다가오는 천둥소리,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도 조금밖에 내리지 않고 시야가 탁 트여 번개를 촬영하기에 좋은 기회였다. 의자 위에 쌓은 가방·타월을 삼각대 삼아 20초, 30초 장(長) 노출로 번개를 기다렸다. 바로 앞 메콩강 위로 벼락이 떨어지기를. 하지만 천둥과 번개는 메콩강을 건너오지 않고 강 건너 태국 농카이(Nong Khai) 지역에만 머물다 물러갔다. 마치 메콩강을 두고 양안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한 것처럼.

번개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은 라오스에서 가장 높은 14층 건물 돈찬팰리스호텔(Don Chan Palace Hotel)에 묵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멀리 강가엔 홀로 불빛을 밝힌 아뉴봉(1767~1829) 왕 동상이 어렴풋이 보였다.

비엔티안의 메콩 강변엔 우리 정부 지원으로 건설한 아뉴봉 공원이 있다. 공원은 라오스인이 산책을 즐기고 운동도 하는 휴식 공간이자 관광 명소다. 그 중앙에 라오스의 옛 왕조 란상 왕국의 마지막 왕인 아뉴봉 동상이 서 있다. 왕은 메콩강 건너 태국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고 있었다. 마치 악수라도 청하는 모습이었다.

아뉴봉 왕은 라오스가 태국 아유타야 왕조의 속국이 되자 인질로 끌려갔다. 왕은 조국 라오스로 돌아갈 목적으로 태국을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았다. 충성을 맹세하고 전쟁의 선봉에 나가 승리를 이끌었다. 그렇게 신뢰를 쌓아 라오스로 돌아온 왕은 태국에 복수할 기회를 노리며 군대를 편성하고 훈련시켰다. 마침내 왕은 30만 대군을 이끌고 아유타야 왕조 정복에 나섰다. 하지만 미리 정보를 얻은 아유타야 왕조가 라오스 군대 정벌에 나섰고 결국 아뉴봉 왕은 사로잡혀 처형당했다. 슬픈 역사의 현장에서 라오스인들은 민족의 자존과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저항한 아뉴봉 왕 동상 앞에 꽃과 예물을 올렸다.

(왼쪽)불교국가 라오스의 아침은 스님들의 탁발 행렬로 시작된다.
(오른쪽)카약을 타고 송강을 따라 내려가다 목욕하는 젊은 여자들과 마주쳤다.

루앙프라방은 도시 전체가 세계유산

라오스는 불교국가다. 가는 곳마다 불교 사원이 서 있다. 그중에서도 라오스 북부에 있는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메콩강 중류 지역에서 14∼18세기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란상 왕국의 수도다. 관광객들은 이른 아침마다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줄지어 탁발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루앙프라방으로 몰려든다.

탁발은 스님들이 일반 대중으로부터 음식 등을 공양받고 복을 빌어주는 의식이다. 오전 6시쯤이면 공양 발우를 걸친 스님들의 탁발 행렬이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은 공양물을 준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기다린다. 언제 왔는지 바람처럼 스며들었다 사라지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한다. 밥·돈·꽃·향·고기·과일·야채·학용품 등 공양물을 발우에 넣어준다.

스님들도 답례를 한다. 염불을 하기도 하고, 발우 속에 들어온 과일과 음식을 다시 꺼내 가난한 아이들의 빈 바구니를 채워주기도 한다. 이른 아침 한적한 길가에서 마주친 탁발행렬은 종교를 초월한 자연의 일부 같은 신비로운 그 무엇이었다. 현대 문명의 시간은 루앙프라방의 신비로움과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잠시 정지한 듯했다.

란상 왕국 시대 루앙프라방은 황금불상과 에메랄드 불상, 수많은 승려와 화려한 사원으로 번성했다. 하지만 태국의 침략과 프랑스의 식민통치, 베트남 전쟁 등으로 쇠락을 거듭했다. 사원은 대부분 파괴되었고 시멘트로 보수한 유적들은 옛 왕국의 영광을 재현하기엔 조잡하고 부족해 보였다. 그나마 왕실 의식을 주관했던 왓 시엥통(Wat Xieng Thong) 사원은 본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화려한 금 장식과 다채로운 벽화, 유리 모자이크, 독특한 지붕 양식 등이 아직 남아 있었다.

사원에서 멀지 않은 국립왕궁박물관 앞 도로(여행자 거리)는 밤이면 야시장으로 변했다. 몽족 등 소수 민족과 주민들이 집에서 만든 옷·인형·신발 등 기념품을 좌판에 벌여놓고 팔고 있었다. 하지만 흔한 호객행위 하나 없었다. 상인들은 수줍은 듯 좌판을 지키고 있었고, 아이들은 좌판 구석에서 여행객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병풍같은 석회암 절벽 … 구이린 닮은 방비엥

배낭여행자라면 꼭 들러야 할 도시가 방비엥(Vang Vieng)이다. 비엔티안에서 차량으로 세 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다. 중국의 명승지 구이린(桂林·계림)의 축소판 같다고 해서 ‘소계림(小桂林)’이라고도 불린다. 방비엥 중심에서 차량으로 20분 정도만 나가면 석회암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강가에서 카약이나 동굴 탐험,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카약으로 메콩강의 지류인 송(Song)강을 따라 가다 보니 강가에서 사는 주민들의 일상이 보였다. 그물을 치는 어부, 작살로 물고기를 잡는 아이들, 짐을 머리에 얹고 강을 건너는 주민들도 있었다. 강가에서 목욕하던 젊은 여자들은 수줍은 듯 치마를 감싸고 미소를 건넸다.

송강엔 크고 작은 나무다리가 여러 개 놓여 있다. 방비엥에 가거든 꼭 그 다리를 건너보시라 권한다. 기왕이면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삐걱거리는 다리를 지나 강 건너 편에 있는 마을에 산책을 가보시라. 순박하고 선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화로운 마을에 들어가서 사탕수수 즙도 먹어보고 손짓 발짓으로 인사도 나눠보시라. 순박하고 여유 있는 삶에서 피어나는 그들의 미소를 보는 것으로 행복할 터이니.

◆ 여행정보=인천공항에서 라오스 비엔티안으로 라오스항공(laoairlines.co.kr)이 직항을 운행한다. 매주 화·목·토요일 주 3회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는데 다음 달 15일부터는 매일 운항할 예정이다. 인천에서 비엔티안까지 5시간30분 걸린다. 비엔티안에서 버스로 루앙프라방까지는 10시간, 방비엥까지는 3시간정도 거리다. 국내선 항공으로 루앙프라방까지 가면 비행시간이 40분, 요금은 8만원 정도다. 라오스항공 02-3708-8530

글·사진 비엔티안·루앙프라방·방비엥(라오스)=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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