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와 슬랙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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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크리스머스·파티」와 망년회를 겸해서 그이의 학교시절 가장 친했던 동창생 10여명이 부부동반해서 모여 놀기로 했다. 그이는 군에 매인 몸이라 결혼 10여년을 전방으로만 전전하다가 고향으로 갓 전근이 되어 돌아왔다.
10여년 전의 옛 친구들은 이제 의젓한 사회 중견급들이 되었다. 그이는 즐거움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며 감개무량한 모양이다. 나 역시 얼굴도 모르는 그이와 친구들과 부인들을 만나볼 것을 생각하니 일종의 불안감마저 금할 수 없다. 그날 입을 나들이옷 한 벌 제대로 없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많지 않은 그이의 월급으로 세 아이의 교육비와 생활비도 빠듯한데 셋방살이의 설움을 덜기 위해 무리해서 조그만 집 한간을 마련했다. 이런 판에 나의 새로운 나들이옷이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입던 단벌 외출복인 「슬랙스」와 「스웨터」를 깨끗이 손질해서 입고 나섰다. 그이는 아무 말 없었지만 내 차림을 보자 얼굴을 찡그렸다. 순간 나는 야속한 ,생각에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참자. 분에 넘치는 치레를 넘어서 알뜰하게 생활해 가면 내년쯤은 깨끗한 옷차림으로 나설 수도 있겠지.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나는 웃는 얼굴로 그이 옆에 나란히 나섰다. <윤루비나·주부·대구시 남산동 1구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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